‘박사방’ 공범 거제 8급 공무원, 직장선 ‘정말 평범한 친구’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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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언행 늘 조심했다” 기억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말수가 적고 많이 내성적이긴 했지만, 그냥 평범했어요. 오히려 또래에 비해선 착했죠. 이런 범죄에 연루됐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텔레그램 박사방(n번방)’ 핵심 운영진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경남 거제시 8급 공무원 A(29) 씨는 직장에서 ‘범죄라곤 생각할 수 없는 착실한 동료’ 가면을 쓰고 어두운 본성을 감춰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거제 토박이인 A 씨는 2016년 1월 지방공무원에 임용돼 고향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거제시청 도시계획과, 하수처리과를 거쳐 지난해 11월 교통행정과로 자리를 옮겼다. 공업직인 A 씨는 주로 시설 관리,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A 씨와 10개월 정도 함께 근무했던 공무원 B 씨는 “정말 평범한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B 씨는 “먼저 말을 안 걸면, 온종일 한 마디 안 할 정도로 내성적인 면이 강했지만 비슷한 성향을 놓고 보면 조금 심한 정도일 뿐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히 평소 언행에서 범죄 연관성을 찾을 순 없었다고 단언했다. B 씨는 “말과 행동을 항상 조심했다. 버릇없이 굴지도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도 적당히 마신 뒤, 조용히 있다 집에 갔다”고 했다.

다만 “주변과 거리를 두긴 했다. 같이 밥도 먹고 당직도 섰는데, 개인 생활에 대해선 언급한 적이 없다. 뭔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 보이는 그런 느낌. 너무 얌전하고 말이 없다 보니, 도대체 저 친구는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생각도 했다”면서 “그래도 맡은 업무는 철저히 했다. 큰 실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실 아직도 긴가민가하다. 그 친구가 그런 대담한 짓을 벌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공무원이다 보니 더 부풀려진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라며 “한 편으로 황당하고, 또 한 편으론 너무 충격이다”며 허탈해했다.

또 다른 동료 C 씨도 “바른 친구로 봤다”고 했다. C 씨는 “어제 언론 보도를 보고 설마, 설마 했다. 어린 나이에 임용되다 보니 동료들과 나이 차가 컸다. 적게는 8살, 많게는 12살 이상 나다 보니 쉽게 어울리진 못했다”면서 “이렇게나 큰 사건에 연관돼 있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거제시청. 부산일보 DB 거제시청. 부산일보 DB

이처럼 동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던 A 씨가 경찰 수사망에 포착된 건 교통행정과 전보 직후다. 당시 경찰은 박사방 연루 혐의로 A 씨를 소환했다. 사실 동료 공무원은 이때까지만 해도 별일 아니리라 생각했다.

B 씨는 “작년 11월 초에 서울에서 형사 2명이 왔다 갔고, 며칠 뒤 (A 씨가)휴가를 냈다. 그땐 휴가 사유를 밝히지 않아 몰랐다. 2~3일 정도 출근을 안 하고 연락도 안 돼 누나에게 전화했더니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갔다고 했다”면서 “동영상 관련이라고 해 단순히 동영상을 공유한 정도로만 여겼다”고 했다.

A 씨 소환조사를 마친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하지만 곧이어 또 다른 범행 의혹이 제기됐다. 박사방 운영과 별개로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 여러 명을 상대로 성착취 영상을 제작, 유포한 혐의다. 결국 지난 1월 경찰에 체포된 A 씨는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서울경찰청이 ‘박사방’ 수사 과정에서 운영자인 조주빈과 범행에 가담한 공범 14명을 적발했는데, 이 중 한 명이 A 씨였다. 조 씨는 박사방에서 운영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회원을 이른바 ‘직원’으로 지칭하며 피해자들을 성폭행하도록 지시하거나 자금 세탁, 성착취물 유포, 대화방 운영 등의 임무를 맡겼다. A 씨는 애초 조 씨에게 동영상을 받아보는 유료 회원이었다가 또 다른 유료회원 모집책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현재 재판 중인 사건과 별건으로 A 씨를 추가 입건했다.

거제시는 경찰로부터 수사 개시 통보를 받은 직후 A 씨를 직위 해제했다. 아직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라 공무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다.

거제시 관계자는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조직 전반이 뒤숭숭하다”며 “유죄가 확정되면 파면 또는 해임 등 상응하는 징계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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