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화학물질 싣고 폭발한 화물선, 수리차 통영 입항 추진
환경단체 “안전한 처리방안 수립이 먼저” 반발
지난해 9월 울산시 염포부두 정박 중 폭발한 2만 5881t급 케이맨제도 선적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이란드호’.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 스티렌모노머 2800t이 선내에 남앗는데, 이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선박 수리를 위해 통영 안정국가산단 입항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일보 DB
울산항 정박 중 발생한 폭발 사고로 수개월 째 방치돼 온 외국적 대형 화물선이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 상당량을 실은 채 경남 통영 입항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선박 수리와 골칫덩이가 된 화학 폐기물 처리를 위한 고육책인데, 환경단체는 사고 선박의 장거리 이동과 폐기물 하역에 따른 2차 오염 피해가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울산지방해양수산청과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울산시 염포부두 정박 중 폭발한 2만 5881t급 케이맨제도 선적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이란드호’가 통영 안정국가산단 내 HSG성동조선(옛 성동조선해양) 입항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문제는 이 선박이 상당량의 유해 물질을 싣고 있다는 점이다. 폭발 사고 당시 화물선에는 스티렌모노머(SM) 5245t, 메틸 메타 크릴레이트(MMA) 889t 등 수십 종 2만 3000t의 화학물질이 실려 있었다. 이중 SM 2800t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SM은 소량만 유출돼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위험물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난 8일 주민 12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병원에 입원한 LG폴리머스 인디아 공장 가스 누출사고의 원인 물질이 바로 SM이다. 앞선 5월에도 충남 서산 한화토탈 공장 SM 유증기 유출 사고로 3000명 이상의 주민과 노동자가 악취와 매스꺼움, 구토 증상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스톨트 그로이란드호는 성동조선에서 남아 있는 SM 폐기물을 하역?처리한 뒤 재 운항을 위한 수리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환경연합은 선박 예인과 폐기물 이적 과정에서 충격 등으로 SM이 유출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폭발사고 당시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 탱크에 일부 SM이 흘러들어 선저 페수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높아 이동과정에서 심각한 해양오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울산에 있는 선박을 통영으로 예인하려면 최소 130km 이상을 운항해야 하는데, 부산항과 부산신항의 주항로는 물론 수많은 어업권이 밀집된 해역을 통과해야 한다. 때문에 예인에 앞서 안전한 처리방식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얼마만큼의 유해물질이 유출됐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는 게 환경연합의 주장이다.
지난해 9월 울산시 염포부두 정박 중 발생한 2만 5881t급 케이맨제도 선적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이란드호’ 폭발사고 모습. 사고 발생 8개월이 지났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 스티렌모노머 2800t이 선내에 남앗는데, 이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선박 수리를 위해 통영 안정국가산단 입항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일보 DB
이런 상황에 사고 선박의 통영의 예인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관계 당국의 태도가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울산지방해양수산청은 당초 ‘울산에는 기술과 장비가 없어 (SM)제거가 어렵다’는 이유로 통영행을 용인했다가 논란이 일자 잠정 연기했다. 선적된 화학물질이 국내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인 데다, 환경부과의 사전 협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SM의 경우 화학물질로 국내에 들어왔지만, 폭발사고로 폐기물이 된 상황이다. 현재로선 SM 폐기물을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상 지정폐기물로 봐야 할지, 일반폐기물로 봐야 할지 모호하다.
일반폐기물로 판단되면 울산시가 폐기물 처리 권한을 갖지만 지정폐기물이 되면 바젤협약에 따라 우리 환경부와 미국 환경부 양쪽에서 허가증을 발행해야 정상적인 처리가 가능하다. 결국 환경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폐기물 처리 장소와 방법 등이 달라는 것이다.
환경연합 관계자는 “사고 발생 8개월이 지나도록 방치하다 ‘골칫거리’가 되자 나 몰라라 다른 지역에 떠 넘기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영에도 이 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이나 기술은 없다. SM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는 수리도 불가능하다”며 “관계 당국은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