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AI와 전염병 그리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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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열 유니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지난 몇 달간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19 덕분에 노벨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많이 팔렸다고 한다. 소설은 1940년대 알제리 북부의 조그만 해안 도시 ‘오랑’을 급습한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페스트는 아직 죽지 않고 언젠가 다시 나타나 인간의 행복을 위협할 수 있다’라고 소설은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 인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전염병만이 아니다. 수년 전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조만간 인간을 지배할 것처럼 두려워했다. 인공지능은 앞으로 더욱더 빠르게 진화해 인간의 자리를 넘볼 것이다. 카뮈의 ‘페스트’는 우리 사회 속에 만연된 ‘비인간적인 것들’을 함축한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로 인간은 아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인간성’으로 맞서야 한다. 인간성은 인문학으로 연결된다. 코로나19도 ‘인간성’으로 극복하고 있다. 전염병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초라해진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야겠다.


바이러스와 인공지능 사이

맥 못 추고 지배당하게 된

인류 존재 한없이 초라해져


인간성 회복에 주력하여

인문학에서 가치 찾아야

포스트 코로나 대응 가능


인문학이란 인간의 삶의 목적과 행복을 탐구하며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좁게는 문(文)·사(史)·철(哲)로 대표되는 인문계, 예술 등의 기초과목을 말하나, 서양에서는 수학, 물리 등의 기초과학을 포함하여 인문과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첫째, 인문학이 인공지능 등 첨단 기계문명에 존재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우리 삶의 목적과 행복에 대한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명령과 절차로 구성된 ‘알고리즘’이며, 아직은 인간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의식(意識)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창의적 정신, 느낌과 감정, 상황에 대한 맥락적 판단은 대신할 수 없다. 물론 AI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 것이다.

AI는 ‘인공지능 로봇’과 같이 우리의 비서 일을 대행하고, ‘웨어러블’과 같이 헬스케어를 도와주는 협력자로서 우리와 ‘공존’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더욱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AI가 할 수 없는 ‘인간다운’ 일을 함으로써 ‘인간 고유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예술적 감각, 철학적 사고, 역사적 고찰, 윤리의식의 함양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물질적 가치 위에 ‘인간적인 가치’를 덧입혀야 한다. 그래야 기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둘째, 인문학은 ‘윤리의식’을 고취시킨다. 아직 AI 자체는 윤리의식이 없다. 그러나 AI 개발자, 사용자인 인간들의 윤리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이 윤리적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인공지능은 그 편견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들의 윤리의식에 따라 착한 AI도 나올 수 있고 나쁜 AI도 나올 수 있다. 나쁜 AI는 사회악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윤리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기계 문명의 ‘몰인간성’에 대해 우리는 올바른 교육으로 대처해야 한다. 요사이 많은 학교가 인공지능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유니스트, 부산대 등 인공지능 연구 및 교육기관을 추가로 선정, AI 고급인재 양성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지능 교육이 코딩, 소프트웨어 중심의 ‘알고리즘적’ 기술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인문학적 소양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윤리도 가르치고 유럽과 미국처럼 비판적 사고 능력도 키워야 한다. 비판적 사고는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이고, 편향되지 않은 사실적 증거에 의한 사고’를 말한다.

유럽의 대표적 대입 수능시험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생각을 쓰는’ 논술형 시험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가’, ‘기술이 인간 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는 근래 출제된 ‘과학 분야’ 문제다. 수험생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비판적 사고’를 써야 한다. 이들은 입학 후에도 대학 생활의 반 이상을 인문학과 기초과학에 투자한다. 그래서 이들의 사고가 우리 사회에 만연된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식 사고와는 아주 다르다. 과학·기술에 인문학 교육을 강화해 우리 사회에 바른 생각과 바른 가치관이 정립돼야 하겠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서구 문명이 일찍 발달한 이유는 당시 첨단 무기인 ‘총’, ‘전염병’에 대한 대응 능력, 산업화의 기본 요소인 ‘철’에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감염병 대처 능력은 이미 세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여기에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무기 개발에 힘써야 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본이 되는 것은 ‘과학·기술·인문학을 두루 갖춘 통섭형 인재’다. 교육의 책임이 막중하다. 이미 많이 지적된 얘기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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