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아이들 수난사 끝내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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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49명. 2013~2018년 6년간 아동학대로 사망한 어린 죽음들의 숫자다. 2013년은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살인 사건으로 온 국민이 공분했던 해였다. 8살, 12살 자매가 상습폭행과 물고문까지 잔혹한 학대를 당했고, 8살 아이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계모는 상해치사죄로 징역 15년, 학대에 동조한 친부는 징역 4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2014년, 아동학대 사망 시 최고 무기징역까지 형량을 강화하고, 친권자의 권한을 정지시킬 수 있게 한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처벌의 강화가 아이들의 수난사를 끝내지는 못했다. 2015년, 인천에서 11살 아이가 부모의 감금, 학대를 견디다 못해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했다. 이 사건은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의 계기가 됐다. 얼마 전에는, 천안에서 9살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짧은 생을 마쳤다. 창녕의 또 다른 9살 아이는 부모의 잔혹한 학대에서 벗어나려 위험천만한 탈출을 감행했다.


아동학대 사건 터질 때마다 공분

땜질 처방보다 근본 문제 직시를

체벌에 대한 관대함 고리 끊어야


아동 체벌 59개국이 법으로 금지

일상의 아동 권리 무관심도 문제

국가와 사회, 책임 있는 자세 필요


대통령과 정부, 지자체는 또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지금까지의 대책들은 왜 아이들의 수난사를 끝내지 못했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표면적 현실에만 공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깔린 근원적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근원에는 자녀를 소유물로, 친권을 치외법권으로 여기는 부모, 이를 방조하며 체벌을 허용하는 국가가 있다. 최근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들에 대한 공분이 일자, 법무부는 아동 체벌 금지 법제화 계획을 발표했다.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한 민법 915조를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와 국내 아동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징계권 삭제, 아동 체벌 금지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자식 교육은 부모 책임이라는 주장에 막혀 매번 좌절됐다. 아동학대 사건에 공분하면서도, 다수가 학대와 체벌은 무관하고 훈육을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고 한다. 체벌과 학대는 무관한가.

아동학대 관련 현장 전문가들의 답변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끔찍한 학대도 한두 번의 체벌에서 시작한다는 것. 아동학대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상습적 폭력, 학대로 이어졌다는 것. 그간의 숱한 연구들이 확인해 준 사실이다. 2018년 3만 건 이상의 아동학대가 신고됐고, 2만 4604건이 학대로 판정됐다. 아동보호 전문기관 외에 112 신고 건수, 은폐되고 방치된 것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더 많을지 아찔하다. 2014년부터 5년간 신고된 아동학대는 무려 8만 7413건에 달한다.

수만 명을 비정상화하는 것은 학대 근절에 도움이 안 된다. 학대로 이어지는 길의 시작에 놓인, 체벌에 대한 관대함이라는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성인에게도 금지된 폭력을, 더 약한 존재인 아동에게 허용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 전 세계 59개의 국가가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민주화와 촛불 혁명으로 인권이 중요한 가치가 된 한국에서, 아동 인권 보장은 더디기만 하다. 부끄러운 민낯이다.

1979년 스웨덴이 세계 최초로 아동 체벌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모든 부모가 범죄자가 되고 가족이 해체될 것이라는 반발과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법의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인식 전환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든 아동이 비폭력적 양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도록, 스웨덴 정부는 양육의 책임을 부모에게만 맡겨 두지 않았다. 부모 교육, 상담 지원, 아동 관련 기관 전문가 교육 훈련 지원 등 비폭력적 육아 실천을 위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나아가 아동 체벌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알려 나갔다.

한국 사회로 눈을 돌려 본다. 끔찍한 학대 사건 보도에는 공분하지만, 일상의 아동 권리에는 무관심하다. 아동을 자율적 인격체로 보지 않고 훈육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며 체벌에 관대하다. 국가는 제대로 완충작용을 하지 못했다. 학대 예방을 위해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세웠지만, 공권력 없는 민간 기관에 위탁했고 충분한 인적, 물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 올해 학교와 돌봄 기관의 문을 닫아 방역에만 집중하는 사이, 많은 아동이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돌봄 공백과 학대 속에 방치됐다. 학대를 방조한 수많은 공모의 고리를 끊어 내지 않고는 아이들의 수난은 계속될 것이고, 그런 사회는 미래가 없다.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 결단하고, 비폭력적 양육 환경을 모든 아이에게 보장하는 것. 인구 절멸을 우려하는 시대, 국가와 사회의 책임 있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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