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안 되는 학교 급식실… 폐질환 공포에 떠는 조리원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급식 조리실 모습.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제공
부산 남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급식실 조리원 두 명이 잇따라 폐질환 진단을 받으면서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남은 동료 조리원들도 두통, 가슴 답답함 등을 호소하며 진통제를 먹고 하루하루를 버텨 내고 있다. 노조는 그동안 환기시설 확대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음에도 교육청이 미온적으로 대처해 이 같은 일이 빚어졌다며 불가피한 경우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산 남구 초등학교 환경 열악
창문 작고 환기 용량도 부족해
조리원 2명 폐질환 진단 잇달아
“진통제 5알 먹고 버텨” 하소연
학비노조 “시설 개선 서둘러야”
12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 부산지부에 따르면 남구 A초등학교에서 2014년 개교 때부터 근무해 온 B 씨가 최근 기침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이라는 의사 소견을 듣고 대학병원에서 정밀진단을 진행 중이다. 앞서 함께 개교 때부터 근무해 온 C 씨 또한 지난해 2월 ‘만성폐쇄성 폐질환’ 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곧 퇴사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A학교의 경우 2014년 개교 당시만 해도 학생 수가 570여 명이었지만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학생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2020년 현재는 1250여 명에 이른다. 학생 수는 배 이상 늘어났는데도 급식 설비는 개교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다 보니 조리실은 턱없이 좁고 환기 용량도 조리 양에 비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급식 조리의 특성상 짧은 시간에 고강도 업무가 이뤄지고 조리 시간에는 고농도의 초미세먼지 등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부산시교육청의 현행 지침에 따르면 1250명 학생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조리장(급식실)의 면적은 최소 280㎡가 돼야 하지만 이 학교의 경우 180㎡가 전부다. 휴게실 역시 9명(조리사 1명, 조리원 8명)이 사용하기에는 좁고 열악한데, 환기 용량 부족에 더해 창문까지 50cm×55cm로 매우 작아 이곳에서 근무하는 조리원들은 지속적인 두통, 기침, 가슴 답답함 등의 증상을 호소해 왔다. B 씨는 “특히 튀김이나 부침 요리 등을 할 때 미세먼지, 수증기 등으로 조리실에 연기가 가득해 눈이 따갑고 기침이 난다”고 말했다.
최민정 학비노조 부산지부 부지부장은 “조리원들이 지속적으로 환기시설 확대와 시설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교육당국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거부해 왔다”면서 “아직도 현장에는 많은 조리원들이 아이들 급식을 위해 근무 중인데,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두통 때문에 매일 타이레놀 5알씩을 먹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부산시교육청에 두 차례 공문을 보내 △급식실 환기시설 교체 △급식실 개폐 가능한 창문으로 교체 △휴게시설 확장 △급식실 근무자 특수건강검진 실시를 요구했다. 노조는 “두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교육청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며 노동부 진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사용자 고소·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다.
앞서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는 환기시설이 열악한 급식실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조리사가 2017년 폐암 판정을 받아 다음 해 숨졌다. 같은 급식실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조리사도 2017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관련해 노조는 조리실의 에어컨과 환풍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데 따른, 고농도 초미세먼지 노출로 인한 산업재해라고 주장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행정소송을 통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우선 창문에 환기팬을 추가하고 급식실에 공기청정기도 넣는 형태로 긴급조치를 하기로 했다”면서 “천장을 뚫는 환기시설 공사와 휴게실 확장 등 큰 공사는 내년 본예산에서 예산을 확보해 내년 1월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노조가 요구한 다른 조리원의 특수건강검진은 7월 말 정밀진단 결과를 보고 업무와의 연관성 정도에 따라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교육청이 늦게라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반겼지만, 남은 조리원들의 근무 여건을 고려해 공사를 1월까지 미룰 것이 아니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현정 기자 edu@busan.com
이현정 기자 edu@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