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두 살 아파트가 함께 키우는 세 살짜리 갤러리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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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수 대표가 자신이 만들어 올해 3주년이 된 ‘갤러리수정’에서 활짝 웃고 있다. 윤창수 대표가 자신이 만들어 올해 3주년이 된 ‘갤러리수정’에서 활짝 웃고 있다.

52년 역사의 서민 아파트 안에 자리한 사진 갤러리가 3주년을 맞았다. 부산 동구 수정동 수정아파트에 있는 ‘갤러리수정’ 이야기다. ‘갤러리수정’은 대표인 윤창수 사진가가 비상업적 갤러리, 사진 위주 대안 공간을 표방하며 만든 문화 공간이다.

수정아파트 4동 A408호. ‘갤러리수정’이 자리 잡은 이 집은 윤 대표가 20대 때 부모님과 같이 살던 곳이다. “아버지도 여기서 돌아가셨다. 직접 거주한 것은 6년 정도이지만, 집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하동 출신인 윤 대표는 중학생 시절 누나가 이 아파트에 살아 방학마다 ‘큰 도시 부산’으로 놀러 오기도 했다.


수정아파트 내 ‘갤러리수정’ 3주년

20대 때 부모님과 살던 곳 빈집 빌려

윤창수 사진가가 만든 대안 문화 공간

주민 앨범 모아 전시하며 함께 호흡

19일까지 ‘3명의 사진가…’ 전시 중


‘3명의 사진가와 3권의 사진집’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수정’. ‘3명의 사진가와 3권의 사진집’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수정’.

윤 대표는 20대엔 디자이너로, 30대엔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로 사진에 친숙한 삶을 살았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올 즈음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느 날 뭔가 막힌 느낌이 들었다. “내 사진에서 흥미가 안 느껴지더라. 2011년 본격적으로 사진 이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며 윤 대표는 사진작가로 눈을 떴다.

“수정아파트를 통해 내가 살았던 서민의 삶을 들여다보자고 생각했다. 내 이름과 얼굴 사진, 신상 명세, 작업 의도를 적은 종이를 주민들에게 돌렸다.” 2012년부터 3년간 윤 대표는 이웃 어르신들의 집을 들락거리며 그들의 밥상, 옷장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업이 끝날 무렵 A408호 세입자가 이사를 했다. “형의 소유였는데, 그 집을 내가 좀 쓰자고 부탁을 했다. 작업실 겸 작은 사진관을 만들어 주민들 사진이라도 찍어 드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갤러리수정’을 여는 데는 2년 정도가 더 걸렸다. 갤러리를 오픈하려 할 때 1년 정도 멕시코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서다. 기존에 하던 일을 접고 멕시코에 다녀와서 사진으로 먹고사는 전업 작가의 길을 가기로 했다.

멕시코를 다녀온 뒤 2017년 5월, 윤 대표는 마침내 자신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사진가를 후원하는 ‘갤러리수정’을 만들었다. 젊은 작가, 신진 작가 초대전을 중심으로 3년 동안 32번의 전시를 했다. 수정아파트 주민들의 앨범에서 꺼내 온 사진을 모아 개최한 ‘추억앨범’전, 폐교를 앞둔 좌성초등학교 학생들의 사진전 등 의미가 있는 기획전도 열었다.

현재 ‘갤러리수정’에서는 3주년 기념전 ‘3명의 사진가와 3권의 사진집’이 열리고 있다. “작년 말 사진 전문 출판 브랜드 ‘윤이’를 만들었다. 사진을 전시로 감상하기도 하지만, 책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저비용 고퀄리티로 작가들을 위한 책을 만든다.” 사진집 편집부터 디자인까지 윤 대표가 혼자 다 맡아서 한다. 이번 전시에는 이둘점, 정계행, 손유찬 등 사진가 세 명이 참여했다. 이둘점 작가의 작품 ‘정소지’에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본인의 이름 석 자로 살아가는 작가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계행 작가는 부산 곳곳에 있는 재개발 지역 철거 직전의 빈집을 찍었다. ‘더 윈도우’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는 집을 두고 떠난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듯 따뜻함이 느껴진다. 손유찬 작가의 ‘양산천’은 한 편의 시처럼 내면적 사고를 인화지 위에 드러낸 작품이다.

윤 대표는 3주년을 맞은 ‘갤러리수정’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제 전국적으로 ‘갤러리수정’의 존재가 알려졌다. 지금도 하고 있지만, 신진 작가 공모전, 부산 아카데미 후원전 등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또 마산, 창원, 진주, 울산, 포항 등으로 작가 발굴 지역의 범위를 좀 더 넓혀 볼 생각이다.” ▶‘3명의 사진가와 3권의 사진집’=19일까지 갤러리수정. 051-464-6333.

글·사진=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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