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리 곁의 문학, 부산의 장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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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덕 소설가

어떤 장소가 어느 날 불현듯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그 장소와 연관된 기억 때문일 것인데 보통은 사랑이나 우정의 추억인 경우가 많다. 작가들이 기억하는 부산의 장소들 역시 그러하다. 이즈음,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부산의 장소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매달 첫 주를 제외한 토요일마다 부산 작가의 책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하고 있다. 덕분에 그동안 일상의 공간으로만 여겼던 부산의 장소들이 인상적인 문학 작품 속 그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문학이 기억하는 부산 장소 많아

부산진·동래시장, 시에 등장하기도


옛 풍경 알 수 있는 작품도 있어

통통배·깡깡이마을 모습 재현


개인사 담긴 장소, 작품 이해 도움

곳곳 돌아보며 작품 챙겨 보시길


이불과 커튼을 샀던 부산진시장은 이제 손택수 시인의 시 ‘지게體’를 떠올리는 장소가 되었다. ‘부산진 시장에서 화물전표 글씨는 아버지 전담이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아버지가 시장에서 대접을 받은 건/ 순전히 필체 하나 때문이었다’. 시인은 지게꾼으로 일했던 아버지의 노동과 자신의 글쓰기 노동을 연결시키며 ‘이제는 지상에 없는 지게체’를 그리워하며 사부곡을 쓴다.

동래시장은 조향미 시인의 시 ‘비 오는 날 동래시장’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비 오는 날이면 ‘거대 담론 심각한 얘기 밀어놓고’ 빗소리 들으면서 오랜 벗과 동래시장 좌판에 마주 앉아서 ‘곰장어 같은 것/ 빗방울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주잔을 기울여도 좋을 것이다.

부산 토박이가 아니라서 잘 몰랐던 부산의 옛 풍경도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정우련 소설가의 단편소설 ‘말례 언니’를 읽은 후에야 예전에는 영도구에서 자갈치시장까지 통통배(똑딱선)를 타고 왕복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정기 동화 작가가 〈깡깡이〉에서 묘사한 영도구의 옛 모습도 인상적이다. 지금은 깡깡이 예술마을로 단장된 대평동 골목길을 걷노라면, 깡깡이 일을 하며 다섯 남매를 키워낸 소설 속 정은이 어머니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다. 수리조선소에서 하루 종일 낡은 배의 녹을 떼어내느라 걸을 때마다 몸에서 쇳가루가 떨어졌다는, 광부처럼 얼굴이 검은 그‘깡깡이 아지매’이다.

그동안 몰랐던 작가의 개인사를 산문집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허심탄회가 드러나는 산문집을 읽은 후에는 그의 소설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이정임 소설가의 산문집 〈산타가 쉬는 집〉을 읽으면서 작가의 부모님이 연지동에서 30년 동안 ‘백미세탁소’를 운영했고 지난 2015년에 가게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 ‘옷들이 꾸는 꿈’의 배경이 세탁소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 곳곳을 종횡무진 탐방하는 ‘길남씨’가 등장하는 배길남 소설가의 산문집 〈하하하, 부산〉에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얽힌 사연들이 한보따리씩 쏟아져’나오는 부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 원류이자 고향 동네인 옛 대연 2동의 대연고개와 신정시장 일대에 얽힌 추억이 곡진하게 드러나 있다. 그의 단편소설 ‘썩은 다리- 세 번의 웃음’에서‘포부대 특공대’아이들이 담력 테스트를 하던 공사현장이 바로 오늘날 신연초등학교 터이다. 대연동과 우암동 사이의 포부대와 우룡산 사이에 자리 잡은 신연초등학교가 작가의 모교이다.

우리 곁의 문학, 부산의 장소들을 찾아서 집밖으로 나서기에 좋은 계절이다. 소설 속 부산의 장소들을 총정리한 조갑상 소설가의 산문집 〈이야기를 걷다〉가 나침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먼 곳의 유명 관광지 대신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나중에 작품까지 챙겨 읽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가 다른 누군가에겐 세상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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