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문학의 팽팽한 긴장으로 글쓰기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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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비평지 ‘문학/사상’ 창간

부산에서 비평지 〈문학/사상〉(사진)이 창간됐다. 출판사 ‘산지니’가 발행하고 문학 평론가 구모룡(61)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편집인, 사상사 연구자 윤인로(42)가 편집주간이다. 〈문학/사상〉이란 제호는 상당히 문제적이다. 제호에 내건 ‘사상’은 이제 문학이 끝났으니 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매우 도전적인 입장을 품은 것이다. 2010년 〈창비〉를 통해 문학 평론으로 등단한 편집주간 윤인로가 이런 입장이다. 그래서 ‘문학 평론가’가 아니라 ‘사상사 연구자’를 내세웠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도 광범한 윤리적·지적 영향력을 지닌 근대 문학의 종언을 말했고, 얼마 전 타계한 〈녹색평론〉 김종철도 세계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글쓰기는 ‘제도 문학’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그런 엄중한 ‘사상’과 마주 선 ‘문학’은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사상’이 추구하는 ‘세계를 문제 삼고 변혁하는 글쓰기’를 ‘문학’이 수행하려면 그저 쓰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고 철저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문학의 가능성’을 말하는 구모룡 편집인은 “‘사상’과 ‘문학’의 팽팽한 관계가 우리들과 독자, 그리고 글 쓰는 이들을 긴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타성과 관성, 헛된 욕망의 글쓰기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삼엄한 글쓰기라는 것이다. 〈문학/사상〉의 과제는 이러한 글쓰기를 실제로 보여 주면서, 추동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될 테다.

〈문학/사상〉 발행인을 맡은 산지니 강수걸 대표는 “비평지 발간을 구모룡 선생과 얘기한 것은 지난해 가을께부터였다”며 “그러던 중 사상을 진중하게 연구하는 윤인로 선생을 만나 일이 진척됐다”고 했다. 〈문학/사상〉은 지역 출판사를 거점으로 부산의 60~40대 선후배가 매체 연대를 했다는 의미도 있다.

구모룡 편집인은 “우리 비평지를 꿰는 정신은 주변부 사상”이라고 했다. “포르투갈의 주제 사마라구,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중국의 모옌처럼 ‘멀리서’ 보면서 구체적으로 쓰는 것은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가능합니다. 이는 근대성과 식민성, 전통과 근대를 두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의 위치가 요컨대 바로 로컬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문학/사상〉 창간호는 ‘권력과 사회’라는 주제를 내걸고 ‘비평’ ‘번역’ ‘서평’이란 세 항목으로 나눠 글 7편을 실었다. 코로나19 방역에 작동하는 권력 장치(윤인로), 탈북민에 드리운 현대사의 깊은 비극(정광모), 대구·경북 마음의 습속에 대한 성찰(신지은) 등 간단치 않은 글이 실렸다.

〈문학/사상〉은 ‘갈수록 좋아지자’라는 모토로 일단 반연간, 200쪽 이하 체제로 출발했다. 독자 후원 방식 출판도 취했다고 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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