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파트 값과 정의로움

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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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경제부장

손흥민이나 호날두가 일반 선수보다 수백배의 연봉을 받는 것은 정의로운 일일까. 개인적인 노력이 더해졌겠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에 못지않은 노력을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천부적인 축구 자질을 타고났다고밖에 볼 수 없는 손흥민과 호날두는 분명히 행운아다. 부모로부터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에 따라 이처럼 큰 혜택을 받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이 같은 물음을 놓고 정의로움에 대해 고민을 했던 학자가 바로 존 롤스다. 롤스의 정의론이 고민한 부분은 어떤 개인이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물려 받는 유전자와 능력, 부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 과연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느냐는 대목이다.


가장 수혜를 덜 받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차등은 정당


수도권 중심으로 한 부동산 광풍은

무주택자에게도 이익 되기 불가능


수도권 밀어주기로 커 온 대한민국

가치 분산 못하면 부동산 정의 없어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요인이 개인의 삶을 결정해 버리는 이 부조리를 막기 위해 롤스는 정의를 위한 장치를 설정한다. 손흥민처럼 천부적인 축구 자질을 타고날 수도 있지만 ‘축구 센스 꽝’으로 태어날 수도 있으므로 후자의 경우에라도 이익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롤스는 기본적인 자유를 평등하게 나눠 가지는 조건에서 사회의 직위와 직책이 모든 이에게 개방되고 가장 수혜를 덜 누리는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에서만 차등이 정당화할 수 있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이런 원칙 아래에서만 손흥민이나 호날두가 일반 선수보다 수백배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정의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 얘기를 잠시 접고 최근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부동산으로 눈을 돌려 보자.

서울 강남을 필두로 수도권 아파트 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자고 나면 몇억이 오른다는 현실은 정의로울까. 부동산 투기로 엄청난 재미를 본 개인들은 생업을 접다시피하고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는 등의 노력을 했겠지만 ‘어쩌다’ 수도권에 살면서 ‘요행히’ 일찌감치 강남 아파트를 구입한 따위의 행운을 누렸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터이다. 어떤 지역에서 더 일찍 태어나 요행히 아파트를 샀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이 같은 부의 편중은 과연 정의로운가.

롤스가 세운 정의론의 전제는 이를 분석하는 데에도 쓸모가 있다.

기본적인 자유를 평등하게 나눠 가지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해도 부동산으로 가장 수혜를 덜 누리는 이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로 부동산 가격 차등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가.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이 타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현재의 모습은 이 같은 전제의 상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 수도권으로 한정을 지어 보면 해당 지역의 최소 수혜자인 무주택자들, 특히 이제 막 주택 구입을 하려 하는 젊은층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의 부동산 가격 차등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보는 게 맞다. 오히려 주택보유자의 욕망과 무주택자의 절망 사이 간극만 더 커 보일 뿐이다. 시중에 떠도는 ‘평범한 월급쟁이가 10년 정도 열심히 저축하면 살 수 있는 게 아파트’라는 옛말이 최근 아파트 값의 정의롭지 못한 측면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은 도대체 왜 이렇게 정의롭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대한민국은 고도성장기에 효율을 내세우며 1등에게 모든 걸 몰아주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수도권이 정치·경제 뿐만 아니라 자원 없는 국가에서 가장 큰 가치를 지녔던 교육까지 블랙홀처럼 독식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가 수도권에 몰리다 보니 모두들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투기세력은 이 같은 가치 싹쓸이를 양분으로 몸집을 키웠을 뿐이다.

그렇게 치솟은 부동산 가격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정의를 해치고 심지어 수도권 안에서조차 주택보유자와 무주택자 사이의 정의를 해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지역균형발전 이슈가 최근 정치권을 관통하면서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궁지에 몰린 여권의 입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이 같은 시대적 배경이 이제라도 정의로운 답을 찾기 위해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지역균형발전 이슈는 정의보다는 효율을 내세우며 각종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도권 중심주의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봉착할 것이다. 수도권 승리가 선거 승리로 이어지는 최근의 선거공식에서 보듯 정치권도 수도권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서면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균등, 공정, 정의를 외쳐 온 이번 정권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지역균형발전에 매진할 의무가 있다. 정권의 구호를 믿고 180석 가까운 국회의석을 몰아준 국민들이 부동산 가격에 분노하고 있는 현실을 치유하려면 정권은 아파트 값의 정의로움부터 새로 되새겨야 한다. nurumi@busan.com


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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