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보수동 대우서점 떠나던 날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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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지식충전소, 못 지켜줘서 미안해…

지난달 31일 책방골목을 찾아 얼마 안 남은 책 꾸러미를 옮기는 김종훈 대표. 김경현기자 view@ 지난달 31일 책방골목을 찾아 얼마 안 남은 책 꾸러미를 옮기는 김종훈 대표. 김경현기자 view@

지난달 23일 보수동 책방골목 내 우리글방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2020 보수동 도시재생대학’이 주최한 ‘보수동 골목길, 사람을 잇다’ 강연이 바로 그것. 이날 강사는 이성훈 부산학당 대표가 맡았다. 이 대표는 책방골목의 내력과 모습을 시(詩)로 풀어냈다. 참가자들은 알찬 강의에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가득한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간 의지해온 기둥이 사라졌다는 허전함이었다. 40년 넘게 보수동책방골목을 지켜 온 대우서점이 이날 그들 곁을 떠난 게 이유였다.

대우서점은 이 골목에서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었던 책방. 역사도 오래됐지만, 규모도 가장 큰 서점이었다. 그처럼 세월의 더께가 가득 앉은 다양한 헌책들을 갖춘 곳도 찾기 어려웠다. 공백은 자연히 클 수밖에 없다. 책방골목이 성장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퇴락하는 분위기에선 더욱더 그렇다. 대우서점이 빠진 자리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닌 것이다.


40년 책방골목 지켜 온 터줏대감

헌책방 넘어 시민의 문화휴식처

수익성 악화에 임대료 상승 겹쳐

구례 섬진강 변으로 이사 ‘새 도전’

지역명물이자 최대 서점까지 나가

쇠락 가속 보수동 씁쓸한 현주소

전통+현대 새 명물로 꽃피우길


■‘책 도사’ 김종훈 대표의 신념


김종훈(68) 대우서점 대표가 보수동책방골목에 책방을 차린 건 1978년. 개점 2년 전에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원래 다른 직장에 다녔었다. 그 와중에 주말이면 보수동책방골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던 그에게 책방골목은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서점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연속된 행동의 결과였다. 골목에 늘 나타나는 그를 눈여겨보았던 헌책방 주인이 자기 서점 인수를 제안했던 것이다.

대우서점은 골목을 찾는 이들에게 지식 충전소 역할을 담당했다. 자료와 책이 부족하던 시기였으니 헌책을 찾는 대학생은 물론 석·박사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지적 호기심이 강렬한 일반인과 귀한 책을 필요로 하는 대학교수들도 단골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는 전공자 못지않은 식견으로 필요한 책을 척척 찾아줬던 것으로 유명했다. 몸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책이 쌓여 미로가 된 내부에서 고객이 원하는 책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모습은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래서 책 도사라고 불렸다. 그 비결은 바로 공부였다. 단순히 책을 파는 상인이 아니라 스스로 독서인이 됐던 것이다.

그가 2013년부터 단골들과 함께 독서회를 연 것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한다. 서점 이름을 딴 ‘대우독서회’에는 20~40년간 대우서점을 들락거린 이들이 참가 중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매월 1회 독서 모임을 지속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 독서회의 시작에 대해 김 대표가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외롭습니다. 독서가 시공을 초월해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행위지만, 실제 주위 사람들과의 접촉이 부족한 경우가 있거든요. 책과 현실의 조화를 꾀하기 위해 독서회를 만들 결심을 하게 된 것이지요.”


지난해 건물주 요구로 점포를 줄이면서 헌책을 정리 판매하던 모습. 지난해 건물주 요구로 점포를 줄이면서 헌책을 정리 판매하던 모습.

■ 도저히 못 견딜 임대료 상승


대우서점이 1978년 첫발을 뗄 때는 겨우 3평 반짜리 점포에 불과했다. 이후 참고서 수요가 늘어나고 김 대표의 노력이 더해져서 규모를 40배가량 키울 수 있었다. 보유 서적 수도 급격하게 늘어갔다. 대우서점이 전성기에 얼마나 많은 책을 갖고 있었을까. 김 대표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25만 권은 족히 된다고 밝힌다. 여기에는 시, 소설, 산문집, 교양서적 등 국내 서적은 물론 다량의 원서들이 포함돼 있다. 원서에는 공학은 물론 미술, 음악, 건축 등 예술 서적들이 있어 최근까지도 관련 전공자들이 자주 찾았다. 대우독서회에도 이런 방식으로 대우서점 덕을 봤던 회원들이 가입해 있다.

한때 이렇게 전성기를 맞았던 대우서점도 서서히 쇠락기에 접어든다. 이 흐름은 책방골목 전체의 성쇠와 궤를 같이한다. 헌책 수요가 갈수록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산의 요지마다 들어선 대형 중고서점들이 책방골목을 더욱더 어렵게 한다. 더욱이 이 대형 서점들이 병행하는 인터넷 판매의 위력은 아직 전통 판매 형태를 유지하는 보수동 헌책방들을 속수무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치솟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둥지 내몰림’ 현상의 시작이었다.

이는 대우서점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다른 악재는 막대한 서적 보유라는 대우서점 만의 장점과 김 대표의 운영 능력으로 근근이 막아낼 수 있지만, 임대료 상승 앞에선 불가항력이었다. 가뜩이나 악화일로인 수익으로 치솟는 임대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김 대표는 점포 수를 점점 줄이게 된다. 2018년에 20평가량을 줄이는 결단을 내린다. 하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건물주가 기존 건물을 줄이고 새 건물을 올린다며 퇴거를 요구하는 사태를 맞게 된다. 김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보수동책방골목에 남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건물주와 임대료 협상을 벌이는 한편 빚을 내서라도 해당 건물을 사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가면서 대우서점 규모는 다시 절반가량으로 작아진다. 이 과정에서 폐기된 책이 약 5만 권에 이른다.


■섬진강 변에 새 보금자리


이 대목에서 김 대표는 보수동책방골목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아니, 어쩔 수 없이 밀려난다는 표현이 맞겠다. 다른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키로 한 것이다. 도심지가 아니라 자연 속에 헌책방을 차리는 구상이었다. 그는 이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꾸준히 여러 곳을 현장 답사했다. 후보지는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 등이었다. 처음에는 지리산 자락인 하동을 염두에 두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최종 선택지는 전남 구례군 구례읍 신월리 398번지. 섬진강이 눈 앞으로 흐르고, 지리산이 지척인 데다 전라선 구례구역이 근처에 있는 빈 건물을 발견한 것이다.

현재 서점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 단계이고, 책 이사는 거의 끝낸 상태이다. 대우서점에서 거기로 옮겨간 헌책은 자그마치 20만 권 정도. 1t 트럭 기준으로 서른 대 분량이다. 운송비용을 아끼기 위해 가득 실었는데도 그 정도였다. 처음엔 트럭을 빌렸지만, 나중에는 자가용을 아예 적재함이 있는 차종으로 바꿔 김 대표가 손수 책을 옮겼다고 한다. 잠정적으로 책방 이름을 ‘향기 담은 헌책방(010-3045-3820)’이라고 지었다. 1층에는 중고서적 판매대가 들어선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책을 볼 수 있도록 개방식 도서관 방식으로 운영된다. 2층은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거나 독서회를 할 수 있는 카페로 꾸며졌다. 3층에는 원서나 전문 서적을 보관하면서 관련 고객에게 선보이는 특별관이 생긴다.

마지막 책 정리를 위해 지난달 31일 골목을 찾은 김 대표를 직접 만났다. 복잡다단한 심정이겠지만, 담담한 표정이다. 새로운 도전이 불안하겠지만, 설렘도 있는 모양이다. 책방골목의 미래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청춘을 바친 곳이니 어찌 걱정이 안 될까. 최근에도 책방 8곳이 입주한 건물이 아파트 재건축용으로 매각됐다. “그동안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책방골목이 앞으로 고유함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재탄생하길 기원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인사말을 들으니 ‘보수동 골목길, 사람을 잇다’ 강연 후에 만난 한 참가자의 탄식이 귀가에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대우서점은 단순한 헌책방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의 문화자산입니다. 보물을 지키지 못해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준영 위원 gapi@busan.com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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