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연극의 재발견
김남석 문학평론가
2020년 부산연극제가 지난 7월 마지막 일요일에 끝났다. 여느 연극제였다면 겨울의 끝에서 시작하여 한 달 여 공연 기간을 거쳐 봄의 절정에서 그 막을 내렸을 터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시작부터 달랐는데, 연극제 참가를 위해 별도의 예심이 사전에 시행되었고, 그 시점도 2020년이 아닌 2019년 11월이었다. 철저한 준비로 2020년 연극제를 새롭게 맞이하겠다는 부산 연극인들의 포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포부를 무색하게 만드는 변수가 등장했다. 심의에 대한 부담 탓으로 극단 참여부터 저조하더니, 코로나19의 확산이 겹치면서 연극제 진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코로나19에 대한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소수이지만 관객들이 극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미루어두었던 창작과 표현의 열기도 다시 지펴졌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부산연극제가 개막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예심 시작한 부산연극제
심의 부담에 코로나까지 겹쳐 한때 위기
젊은 극단 대상 차지하며 무사히 폐막
연극에 대한 열정 다시 생각하게 해
사각지대였던 관객의 가치도 재발견
관객 위해 연극 존재하는 환경 만들어야
올해의 대상은 젊은 극단에 돌아갔다. 그들은 연극제에 처음 참여하는 극단이었고, 평균 연령이 낮아 수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점쳐졌던 신예 단체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노련미를 대체할 수 있는 열정이 있었는데, 그 열정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동시에 그들의 수상 이면에 잠재된 두어가지 의미를 함께 되새겨 볼 필요를 느꼈다. 우선 젊은 그들이 주어진 여건을 이겨내는 데에 주력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연극인들이 연극을 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보다,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 혹은 ‘모자란 것’에 상습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해 오곤 했다. 그런데 연극제에 참가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 젊은 극단의 출현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해, 여태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소중함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흔히 연극의 핵심 3요소에 포함되면서도, 실제 공연에서는 뒷전이기 일쑤인 ‘관객’이 그들이었다. 코로나19는 연극에서 관객을 가장 먼저 사라지도록 만들었고, 관객이 사라진 극장은 창작하는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관객의 부재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연극의 존립 자체마저 위협할 정도도 위협적이었다. ‘관객’ 역시 연극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요소였음에도 늘 당연하다고 치부하며 돌보지 않던 가치였던 셈이다.
연극에 대한 ‘열정’과 그 열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관객’의 재발견은 연극의 미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지난 시절 부산 연극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전언(message)을 투입하는 데에 급급했고, 이렇게 생경하게 투입된 암호 같기도 하고 훈화 같기도 한 전언이 관객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에 익숙했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보는 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연극을 마냥 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공연의 사각지대에 홀로 버려졌던 관객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도울 것이다. 이제라도 연극을 위해 관객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관객을 위해 연극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에 대한 열정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연극을 재개하면서, 연극이 최초 우리에게 주었던 희열과 자극을 순수하게 복원할 기회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보다 연극 자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최초의 행복했던 시간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때의 열정을 되살려낼 수 있다면, 2020년 부산연극제는 분명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나지만 늘 끝나지 않기도 하는 연극처럼, 연극은 또 고치고 바꿀 시간을 허락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