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위선적 삶에 고통받는 아이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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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비밀 / 윤재인·오승민

‘딩동’. 벨이 울리고 열린 문 안으로 한 가정이 보인다. 단란한 가족사진 아래 부모와 두 아이가 우아하게 식사를 하다 반갑게 택배 아저씨를 맞이한다. 멋지게만 보이는 이 가족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들려주는 주인공은 이 집의 딸인 고양이 현아이다.

현아네 가족은 멧돼지 아빠, 토끼 엄마, 강아지인 동생 현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소에는 음식을 바닥에 놓고 먹지만 손님이 오면 식탁에서 먹는 연기를 한다. 네 발로 뛰는 것이 본능인 아이들에게 아빠는 늘 “두 발로 걸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남보다 우월해 보일까’ 하는 것이다.


이중적 가치관, 아이에게 치명적 폭력

소통하지 못하는 한 가족 이야기 그려


교회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현아는 나귀 뒷다리 역을 맡았다. 그런데 아주 잠깐 현아가 아기 예수 인형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엄마가 착각을 하며 사건이 터진다. “우리 애가 주인공”이라며 자랑하고 자축하는 부모 앞에서 현아는 진실을 말할 수가 없다. 공연 당일 무대에 선 현아의 모습을 본 아빠가 폭발하며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우리 집 비밀〉은 부모의 위선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윤재인 작가는 “자본이 곧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허황되고 과시적인 삶을 사는 부모와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일상이 어떠할까에 대한 생각에서 글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부모는 현아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지만, 남들보다 폼 나게 꾸미기를 강요한다. 윤 작가는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장려하는 부모의 이중적인 가치관이야말로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가 난 아빠가 무대 위에 뛰어올라 소리를 칠 때 현아는 ‘그래도 난 두 발로 서 있었어’라고 이야기한다. 정신적으로 억압 받은 아이의 자동반사적 행동에서 전해지는 ‘공포감’. 부모의 검고 커다란 그림자 앞에 위축되고 자아를 잃은 듯한 현아의 모습에서도 ‘폭력의 영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빠는 엄마의 눈을 가리고, 엄마는 현아의 입을 가리고, 현아는 동생의 귀를 막은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폭력의 중심에 선 아빠, 진실과 거짓을 구별 못 하는 엄마, 부모에 짓눌린 현아와 철모르는 현준. 오승민 작가는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한 가족의 모습인 동시에 각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위선적인 삶은 현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날 현아는 그림일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즐거운 하루’를 기록한다. 그런데 그림 속 식탁 아래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주 작은 고양이가 보인다. 상처받고 도움을 구하는 현아의 속마음이다. 윤재인 글/오승민 그림/느림보/48쪽/1만 5000원.

오금아 기자 chris@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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