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 톡톡] 좋은 사람과 착한 고양이, 나쁜 바이러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서근주 UN동물의료센터 대표원장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한 길고양이는 임신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다. 한여름에 힘겨운 육아를 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유년기를 맞이하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사람 역시 신생아의 절반은 성인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다. 형제 중에 많은 이가 꽃이 피기도 전 원인도 모른 채 스러져간 그 시절과 지금의 차이는 질병의 연구를 통한 효과적인 백신의 개발, 수많은 과학자의 노력과 희생의 결과다.

고양이 역시 많은 연구자의 노력으로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 효과가 증명된 백신과 치료기술이 개발됐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양이 파보바이러스(Feline Parvovirus)다. 파보바이러스는 백혈구의 수가 매우 감소하는 특징을 보여 범백혈구 감소증, 혹은 범백으로도 불린다. 감염되면 최선의 치료를 한다 해도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떠나보내야 하는, 어린 고양이일수록 더욱 치명적인 질병이다.

요즘같이 길어진 장마와 폭염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태풍에 대비해 쉼터를 정비하거나 탈진된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 병원에 오곤 한다. 그 고양이들은 파보바이러스를 비롯해 다른 전염병에 걸린 아이들이 매우 많다. 필자의 병원에는 어젯밤에도 구조된 길고양이 한 마리가 파보바이러스 감염을 진단받아 현재 격리 입원 중이다.

파보바이러스같은 전염성 바이러스는 여름에 활발하다. 면역력이 약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된 길고양이들이 만나 바이러스의 복제, 전파, 변이를 거쳐 전염성 질병의 거대한 군집을 형성한다. 이 공간에 사람이 발을 들여 고양이를 구조해 집으로 데려가거나 병원을 찾아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구조자들의 대부분은 반려묘와 함께 사는데, 매년 필요한 예방접종을 철저히 하지 않았거나 혹은 처음부터 기초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고양이가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전염병에 노출된다.

따뜻한 구조자들의 선의가 야생의 바이러스를 집고양이에게 전염시키는 안타까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모든 사람이 전염병과 잠복기에 대해 인지하고 예방접종, 격리, 소독 등의 조치를 철저히 해야 한다.

구조한 고양이와 접촉한 뒤에는 전염성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소독약으로 철저하게 소독해야 하며, 전염성 질병의 잠복기가 대략 2주 정도 되니 집고양이와 구조 고양이는 최소 2주간의 격리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이라도 며칠이 지나면 구토, 설사, 식욕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어, 병원으로 내원해 전염병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접종과 소독을 통해 질병의 전파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니 부디 가여운 길고양이들에게 가졌던 관심을 거두지 않기 바란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