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덕수궁에 ‘당구장’ 고종·순종도 즐겼던 ‘옥돌’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소소한 즐거움

황제 전용 당구장서 사용했던 당구 점수대.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황제 전용 당구장서 사용했던 당구 점수대.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한 때 음지 문화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사실 당구는 대한제국 황제가 직접 수용한 기품있는 여가생활이었다.

고종과 순종은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여러 서구 문물을 수용해 국제 사회 속에 당당한 독립국으로 자리 잡고자 했다. 덕수궁에 서양식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황실 가족이 거주했던 전각 내부는 서양식 가구로 꾸며지기도 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황제의 여가생활도 신문물의 영향이 들어왔고 그게 바로 당구다.

당구는 당시 ‘옥돌’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1912년 매일신보에는 순종이 일본 도쿄 소재 회사에 2대의 옥돌대를 주문했고 창덕궁 인정전 동행각에 옥돌 운동장을 마련했다고 전한다. 황실 당구장을 만든 것이다. 순종은 월·목요일을 옥돌 운동일로 정했는데 정해진 날짜 이외에도 당구장에 빈번하게 왕림한 것으로 알려져 당구에 상당히 빠져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순종이 주문한 황실 당구대는 대한제국 상징 무늬인 오얏꽃이 장식돼 있었다. 당구대 뒤 배경으로 매화도병풍과 나전백경도병풍을 사용했고, 두 병풍 사이에 당구 큐대를 세웠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당시 대리석 당구대로 추정되는 일부분과 당구 점수대(계산기), 당구장을 꾸몄던 병풍이 유물로 남아있어 당시 화려했던 황실 당구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순종은 외국인 당구 선수가 경성에 오면 반드시 만나봤을 정도로 당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손종 비 순정효왕후와 함께 당구를 쳤다는 기록도 있어 황실에서 당구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황실 당구장은 창덕궁뿐만 아니라 퇴위한 고종이 머물렀던 덕수궁에도 있었다. 고종은 덕흥전에 설치한 당구장에서 밤 2~3시까지 침실에 들지 않고 공을 칠 정도로 당구를 좋아했다.

고종과 순종은 일본에 의한 국권 침탈의 한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당구로 잠깐이나마 시름을 달랜 것으로 보인다.

김효정 기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