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축소판’ 영도 근현대 생활 민속 집대성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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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는 1890년대 제주 해녀들이 처음으로 제주 섬을 벗어나 바깥 물질을 시작한 첫 기착지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부산 영도는 1890년대 제주 해녀들이 처음으로 제주 섬을 벗어나 바깥 물질을 시작한 첫 기착지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부산 영도의 근현대 생활 민속에 대한 종합 보고서가 나왔다. 부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2021년 부산민속의 해’ 사업의 하나로 발간한 총 1850쪽에 이르는 5권의 보고서가 그것이다. 〈영도 대평동 민속지Ⅰ·Ⅱ〉 〈영도에 오다: 이주와 정착〉과 〈영도에 살다: 삶과 생활〉 〈영도에서 본 부산의 해양문화〉는 영도의 근현대 생활 문화를 집대성한 것이다. 사진도 많이 들어 있어 책 체제는 시원시원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자 4명, 전 연구자 1명과 부산의 연구자 1명이 1년 반 동안 현장 조사와 집필 과정을 거쳐 영도의 근현대사와 도시 민속, 해양 민속, 구술 생애사를 기록했는데 일부 연구자는 주민들과 낯을 익히기 위해 방역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도에 오다’ 등 종합 보고서 5권

부산시·국립민속박물관 공동 발간

박물관 홈페이지서 다운로드 가능


왜 영도인가? 윤성용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영도다리로 대표되는 영도는 바다와 조선소, 해녀와 노동자, 어민과 선원, 전국 각지로부터 온 피란민과 산업 이주민 등이 어우러진 부산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영도 대평동 민속지Ⅰ·Ⅱ〉(김호걸 황무원 윤일이)는 수리 조선업이 뿌리내려 ‘그 어떤 배도 만들 수 있다’는, 이른바 ‘깡깡이마을’로 알려진 영도 대평동의 당대 생활 민속 보고서다. 이 두 권은 총 8개 장(생업, 세시 풍속과 민간 신앙, 의생활, 식생활, 민속사회, 도시 재생 등)의 체제를 갖췄다.

1장 ‘영도와 대평동’에선 영도와 대평동의 근현대 역사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영도 매축은 ‘살마굴 매축’(6만 1530평)과 ‘영도다리 건설을 위한 매축’(10만 1466평), 2번에 걸쳐 이뤄졌으며 이 중 영도다리 매축 때 영도 쪽(대교동 봉래동)에는 4만 1951평이 생겼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해안을 매립하기 위해 영도초등학교, 남항초등학교, 대원아파트 자리를 채토장으로 삼았는데 채토와 매립 공사 중 노동자 58명이 사상했다고 한다. 영도 도선(渡船)과 유곽 역사도 핵심을 발라 서술돼 있다.

6장 ‘주생활’에서는 대평동 속 한국전쟁 때 함경도 피란민이 모여 살던 ‘이북동네’, 1960년대 제주 해녀들이 정착했던 ‘제주골목’과 함께 일식 가옥과 조선인 전통 가옥 등을 세세히 기록했다. 부록으로 영도 일본 강원 경남 경북 출생으로 각기 다른 생업을 이어 온 주요 제보자 6명(인쇄 세탁 수산 제화 음식 깡깡이)의 구술 생애사도 실려 있다.

〈영도에 오다: 이주와 정착〉과 〈영도에 살다: 삶과 생활〉(이현아 황동이)은 본격적인 구술 생애사다. 2명의 연구자가 1년 동안 ‘영도 사람’ 100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이 중 3권 〈영도에 오다: 이주와 정착〉은 영도 토박이, 귀환 동포, 이북 피란민, 산업화 시기 제주 호남 영남의 이주민 총 18명의 구술 생애사를 427쪽에 기록한 것이다. 부산의 뿌리 깊은 나무들, 민초의 삶이 옹골차게 기록돼 있다. 상선 기관장, 연안복합어업선장, 참기름 가게 사장, 이발사, 도안사, 보험 설계사, 금은방 주인, 81세의 해녀, 해양 경찰, 해양생태환경연합회장, 의류 판매점 사장, 목도꾼, 깡깡이 아지매로 살았던 삶이 생생히 수록돼 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아픔을 딛고 햇빛에 얼굴이 타서 피부 껍질이 벗겨져 두두둑 떨어지는 고된 노동을 했던 눈물겨운 삶이 차곡차곡 쟁여져 있다.

4권 〈영도에 살다: 삶과 생활〉는 인터뷰한 100여 명의 얘기를 영도 특징이 잘 드러나는 키워드 6가지로 집약해 서술했다. 부산 사람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영도다리,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영도 최초의 공설 시장인 봉래시장과 6·25 이후 형성된 남항시장, 영도 사람들의 발이 된 도선·통선·전차, 한국 최대의 도자 회사였던 대한도기회사, 국내 조선 1번지 대한조선공사, 영도 사람들의 자랑 태종대가 그 6가지다. 6가지 키워드는 그것을 삶의 현장으로 살았던 이들의 구술을 통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상술돼 있다. 태종대 자살바위는 험상궂은 삶을 벼랑 끝에서 마감하던 험악한 곳이었는데 시절도 좋아지던 1990년대 80m 높이에서 떨어졌던 사람이 극적으로 살아나면서부터 자살이 확 줄었다는 얘기도 전한단다.

5권 〈영도에서 본 부산의 해양문화〉(김창일)는 ‘영도의 해녀’ ‘영도의 연안어업’ ‘영도 봉래산과 해양신앙’ 그리고 ‘부산공동어시장과 고등어’를 통해 영도의 해양 문화를 기록했다.

방대한 이들 ‘조사 보고서’ 내용 전부는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자료마당)에서 파일 형태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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