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코앞에서 발암물질 석면 해체 공사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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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동 ‘문현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부지에서 해체한 석면을 차에 싣고 있다. 전포보람어린이집 학부모 제공 9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동 ‘문현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부지에서 해체한 석면을 차에 싣고 있다. 전포보람어린이집 학부모 제공

부산의 한 국공립어린이집과 불과 100여m 떨어진 공사장에서 석면 해체 작업이 진행돼 학부모들이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 부산진구 전포보람어린이집 학부모들은 9일 오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현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주체인 LH는 어린이집이 이전될 때까지 아이들 생명을 위협하는 석면 철거 공사를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 어린이집은 당초 LH가 마련한 사업부지 내 대체 부지로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이전이 보류된 상태다. 아직 어린이집이 이전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LH 측이 어린이집과 150m 떨어진 곳에서 석면 해체 공사를 강행하면서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현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어린이집 아직 이전 못 했는데

150m 떨어진 곳서 해체 작업

학부모 “옮길 때까지 중단” 촉구

LH “적법 절차 거쳤지만 재논의”


부산진구에 따르면 전포보람어린이집은 LH가 추진 중인 ‘문현2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 부지에 포함돼 있다. 이 어린이집에는 65명의 원아가 다니고 있으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일 15~20명의 아이들이 긴급 보육을 받고 있다. LH는 2014년 전포보람어린이집을 사업부지 내 A부지로 이전하고, 이를 부산진구에 기부채납하기로 구와 협의를 마쳤다.

그러나 올 6월, LH는 갑작스레 A부지가 아닌 전포1동에 위치한 B부지를 제안했다. A부지가 주거환경개선사업 공사장 진출입로로 활용돼 아이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학부모들은 B부지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B부지가 현재 어린이집보다 훨씬 좁은 데다, 4층으로 지어져 아이들이 계단으로 이동해야 하고 놀이터도 옥상에 마련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포보람어린이집의 교육 철학인 ‘생태교육’도 그곳에서는 할 수 없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부산진구는 LH와 함께 새로운 부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전포보람어린이집 학부모들이 9일 오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전포보람어린이집 학부모 제공 전포보람어린이집 학부모들이 9일 오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전포보람어린이집 학부모 제공

어린이집 이전 부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LH 측은 7월 말부터 예정대로 석면 철거 공사를 강행했다. 석면 철거 공사는 11월까지 예정돼 있다. LH는 공사를 더 늦출 수 없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 중이란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현재 사업구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빨리 이 공사가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공사를 미룰 수는 없었다. 관계 기관에 신고 후 적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고스란히 석면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부모 김 모 씨는 “아이를 등원시키는 길에 해체한 석면을 밀봉도 하지 않은 채 트럭에 싣고 이동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에 아이들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데, 제대로 관리·감독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산진구는 공사 중지 요구조차도 못하는 상황이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공사 구역이 남구 관할이다 보니 우리 구에서 공사 중지를 강제할 수는 없다. 최대한 주말을 활용해 공사를 하거나, 펜스를 치고 해 달라는 정도로 협조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LH 측은 석면 해체 공사와 관련해 학부모들과 다시 논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이 일대가 노후 주택이 대부분이다 보니 ‘석면밭’이다. 관리되지 않는 석면을 빨리 철거하는 게 아이들 건강상에도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학부모의 반발이 심한 만큼 공사 진행 여부를 논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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