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꿈의 도시’ 부산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지난 시절과 사뭇 다른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일상화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가을엔 많은 사람이 추석 성묘도 온라인으로 하고, 친지·친구들과의 만남도 최대한 자제하는 ‘집콕 운동’을 실천했다. 방역의 영향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차분히 서로 절제하며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부산 지역은 차분함을 넘어 생기를 잃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올해 부산엔 불미스러운 여러 일이 일어났다. 먼저 ‘시민이 행복한 부산’을 공약했던 시장의 불명예 사퇴가 있었다. 시장 부재 상황 속에서 지난달 불어닥친 두 번의 태풍은 시청 내부의 리더십 부재를 절감하게 했다. 여기다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소식은 부산 시민의 사기를 급격히 꺾고 있다.
올해 부산 지역 불미스러운 일 많아
시장 사퇴, 신공항 문제 등 사기 저하
도시 활력 회복 위한 프로젝트 필요
쿠리치바, 마이애미 등 사례 본보기
도시계획, 패러다임 전환 관심 절실
시민 인식·공공 책임 함께해야 성과
올가을에도 여느 때와 같이 대입 수시 전형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대학에서 도시계획이나 도시공학을 전공하려는 고교생들이 즐겨 보는 책이 있다. 바로 ‘꿈의 도시, 쿠리치바’다. 이 책을 읽은 많은 학생이 도시에 관한 열정을 품게 된다고 한다.
브라질 남부의 작은 도시 쿠리치바에 1971년 도시계획가였던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가 시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20년간 창의적 아이디어로 빈곤, 환경, 교통 등 도시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 남미의 한 작은 도시는 ‘슬럼 도시’에서 ‘지속 가능한 친환경 생태 도시’의 세계적 수도가 됐다. 미국 주간지 타임(TIME)은 이 도시를 지구에서 친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른 도시로 선정했다. 쿠리치바를 새로운 도시로 바꿔 놓은 자이메 레르네르가 아이디어 공유 콘퍼런스인 TED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는 “쿠리치바는 재미와 장난이 만든 생태 도시”라며 자신의 최대 업적은 시민에게 꿈을 심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쿠리치바의 아이디어는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세계 도시가 벤치마킹했다. 구체적으로 중앙 버스전용 차선제, 쓰레기 분리수거 시스템, 도시 소외 계층을 위한 소규모 시립도서관, 방재 기능을 갖춘 공원과 같은 혁신적 도시계획 정책이 실행됐다.
최근 세계 도시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꿈을 현실로 만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먼저 폐선된 고가도로를 자동차 운행 대신 보행자 전용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뉴욕시의 하이라인(The High Line) 공원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세계적 명소가 된 이 공원은 원래 맨해튼 지역에서 운행됐던 고가 화물철도 노선이었지만, 철거 대신 주민 주도로 여기에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이 아이디어는 1993년 개장한 파리 12구역에 버려진 고가 철도 위에 조성된 선형공원인 프롬나드 플랑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대서양 연안 도시인 미국 마이애미에도 새 프로젝트가 시도됐다. 시 해안가 일대를 자전거 전용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시작은 예술가였다. 자동차 도로로 단절된 마이애미가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수변공원, 백사장, 요트장이 이어지는 마이애미에 대한 시뮬레이션 영상이 미술관에 전시됐고, 이를 본 시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전시는 계속 연장됐고, 즉시 건설을 위한 모금이 시작됐다. 이 열기는 정치인까지 호응하며 시장 선거 공약으로 발전했다. 시는 곧 이를 공식 프로젝트로 채택했다.
이를 본 미국 한 대학의 도시계획학과 교수가 부산을 방문한 뒤 이 영상을 보내왔다. 아름다운 해변이 많은 우리 부산에도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근대 도시계획은 이전부터 이상 도시를 지향하는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것을 과업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완벽한 계획은 불가능하다며, 점진적인 문제 해결의 기능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문제 해결이든 이상 도시의 실현이든, 시민이 우선 문제를 인식하고 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게 공공 분야의 책임이다. 이런 과정이나 관심 없이는 도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쿠리치바, 뉴욕, 마이애미의 사례에서 보듯 현재의 도시 문제는 이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민의 꿈과 노력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이미 2010년 ‘better city, better life’를 주제로 개최된 상하이 엑스포에서도 고가도로를 보행자 전용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제시된 적이 있다. 서울시도 뉴욕 하이라인 공원을 모델로 서울역 인근 고가도로를 ‘서울로 7017’로 조성했다. 이처럼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시민의 관심과 노력은 부산에도 절실하다. 우리 부산도 시민이 함께 재미있게 노래하고 장난치며 꿈꿀 수 있는 대담한 도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