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덕목이란 대단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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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BIFF 상영작 리뷰] ‘소울’

영화 ‘소울’의 한 장면. BIFF 제공 영화 ‘소울’의 한 장면. BIFF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야외 상영관이 주는 특별한 정취가 있다. 나는 ‘어둠 속의 댄서’(2000)를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 상영관에서 보았다.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나눠 준 우비를 입었고 그걸로 견딜 수 있을 만큼 비가 내려 상영은 계속되었다. 종종 빗방울과 눈물이 함께 섞여 흘렀다. 그런 경험은 영화에 대한 찬반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누군가 부산국제영화제 야외 상영관에서 영화를 봤다고 말한다면, 그의 발언에 추가된 낭만이라는 필터를 감안하고 들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영화의전당 야외 상영관에서 ‘소울’을 보았다. 이따금 불어오는 강바람에 이마가 차가워지는 가을밤이었다.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별 볼 일 없는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유명한 재즈 쿼텟 멤버로 연주할 기회를 얻자마자 사고를 당한다. 영화의 주요한 사건은 그렇게 느닷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삶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 그걸 허점이라고 하려면 망설여지기도 한다. 어쨌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조는 자기 몸으로 돌아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세상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골칫덩이 영혼 22번(티나 페이)과 만나서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조가 온갖 고생을 하는 동안, 재즈와 슬랩스틱(몸 개그) 소동극과 폭포수 같은 대사들이 섞여 영화는 한바탕 떠들썩해진다.

‘업’(2009)에서 사람의 한평생이 담긴 오프닝 시퀀스 앞에 눈물을 참는 게 소용없고 ‘토이 스토리 3’(2010)에서 우디의 작별 인사가 기어이 각자의 마음속 어린이들을 불러내듯 이 영화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 조가 피아노를 치다가 무아지경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게 될 때다. 피자 한 조각, 막대 사탕,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 삶의 덕목이란 무언가 대단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순간들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단 몇 개의 숏들이 나열된 이 장면을 통해 조가 자기 죽음을 인정하고 22번을 이해하게 되었음이 설명된다. 영화에서 가장 깊고 고요한 순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스크 없던 일상이 그립지만, ‘소울’ 식으로 말하면 이제 평범한 것은 마스크를 쓰는 일상이 되었다. 그것은 체념과는 다르다. 좌석 간 거리 두기로 멀찍이 앉아 영화를 봤지만, 음악이 흐르면 그에 따라 조그맣게 흥겨워하느라 앉은 자리가 흔들리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여전히 비슷한 지점마다 우리는 낯모를 사람들과 함께 소리 내 웃고 있다. 연출자 피트 닥터가 보여 주는 영적인 세계가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주어진 현재를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시끄럽고 복잡하고 활기찬 영화 속 도시 풍경, 그 범속한 사람살이의 모습에 눈길이 머문다.

김지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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