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들어내고 사진을 드러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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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사진가의 ‘나무 #18_1_1’은 존재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명호 사진가의 ‘나무 #18_1_1’은 존재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사진으로 [드러내다].

가려진 것을 보이게 하는 ‘드러내다’와 무엇인가를 제거하는 ‘들어내다’. 전자는 나타나게 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사진가 이명호는 서로 상충되는 의미를 가진 두 단어의 발음이 같음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존재를 드러내는 사진 작업을 계속했는데 어떤 면에서 더 멀어진 것 같았다. 오히려 대상을 들어내거나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명호 사진전 [드러내다]

해운대 고은사진미술관

흰 천 세워 나무 드러내고

인화된 사진 긁고 들어내

드러냄과 들어냄에 주목


이미지를 긁어서 들어낸 작품 ‘섬_[드러내다] #1’.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미지를 긁어서 들어낸 작품 ‘섬_[드러내다] #1’.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명호 사진전 ‘[드러내다]’가 부산 해운대구 우동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25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드러내다’와 ‘들어내다’를 사진 행위로 드러내 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재현’ ‘재연’ ‘사이 혹은 너머’의 세 영역으로 나눴다. 각 영역에 [하:야치], [하:야치(도)]와 [까:마치(도)], [까:마치]로 이름을 붙여서 흰색, 회색, 검은색의 공간에 작품을 걸었다.

나무 뒤에 흰 천을 세워 사진을 찍은 것은 드러냄의 작업이다. 평범한 나무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뒤에 흰 천을 세워서 사진을 찍어 내는 행위’를 강조하고 싶어서다.

나란히 두 장이 걸린 전라남도 해남 파인비치골프링크스에서 찍은 소나무 사진은 올해 신작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살리고 싶어서 해가 지고, 달이 뜰 때 사진을 찍었다. 소나무 뒤에 흰 천을 씌운 비계를 설치했더니 평소 그냥 지나가던 골퍼들이 인증샷을 찍더라. ‘여기에 나무가 있다’고 환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제주 용눈이오름과 거문오름 사이 억새들을 찍은 사진 안에는 바람이 분다. 작가는 억새가 고운 물결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해 “프린트를 하거나 톤을 잡을 때 회화인 듯 사진인 듯, 감성을 담아서 표현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액자 속에 하얀 캔버스만 넣어 둔 것 같은 작품은 들어냄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부산에서 찍은 사진으로 ‘들어내는 작업’을 했다. 을숙도에서 찍은 풍경 사진을 인화해 의료용 칼로 긁어냈다. 작가는 구태여 찍은 사진을 1주일씩 수행하듯 파내는 과정을 통해 아무것도 없는 것을 모든 것으로 만들었다.

“대상을 직접 보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비워 둘 때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다. 두 작품을 마주 보게 놓아서 관람객이 그 속에 자신을 비춰 보도록 했다.” 이 작가는 사진에서 긁어낸 것들을 모아 보면 한 줌밖에 안 된다고 전했다. 은색 테두리를 두른 사진은 흐린 날 찍은 을숙도의 사진을 외곽만 남기고 파낸 것.

[까:마치] 코너에선 드러내고 들어내서 창조한 사막의 오아시스를 마주한다. 몽골 고비사막의 오아시스는 현지에서 320명을 동원해 하얀 천 3km를 이어 만든 풍경이다. 한쪽에 전시된 미니 액자들 속에 당시 작업 과정이 기록돼 있다. 두바이 사막의 오아시스 사진은 인화한 뒤 일부분을 긁어내서 만들었다.

독특한 노란빛 사막 풍광은 57도까지 치솟는 현지의 더위에 필름이 녹아서 생긴 현상이다. “RGB로 빛 받아들임이 틀어지며 완전히 회화 같은 작품이 나왔다. 우연이라는 요소가 개입해 세상에 없는 공간이 사진 속에 재연된 것이다.” 이 작가는 ‘자연의 선물’이라며 웃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드러내고 들어낸 작업이다. ▶이명호 사진전 ‘[드러내다]’=25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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