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공정함, 정의 그리고 도시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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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즐비한 해운대구 마린시티 고층빌딩. 부산일보DB 초고층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즐비한 해운대구 마린시티 고층빌딩. 부산일보DB

“초고층 건물이 이미 밀집된 해운대 지역을 또다시 ‘고층유도구역’으로 지정하는 건 낙후된 서부산과 형평성 측면에서 어긋난 것은 아닌가요?” 지난주 ‘부산시 높이 관리 과제’ 관련 토론회에서 사회자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시는 얼마 전 경관 관리를 위한 높이 기준을 발표했다. 난개발이 진행될 우려가 있는 주거지역의 건축 높이는 평지에서 40층까지 건설 가능한 표고 120m로 제한했다. 동시에 현재 도심 기능을 하는 서면, 광복동, 해운대 일부 지역은 ‘고층유도 및 관리구역’으로 지정했다. 건설업계는 이마저도 재산권 침해가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도시경관 유지·관리하는 도시계획

세월 따라 성장해 온 과정 반영해야

최근 무분별한 용도변경 난맥상

경관 부조화와 사유화 상황 심각

도시계획에도 민주적 원칙 지켜야

아름다운 경관은 모두의 공공 자산


미국에서 도시계획이 본격적으로 제도화하기 이전인 1925년 시카고대학교 교수였던 버제스는 시카고의 도시공간 구조를 파악해 ‘동심원 이론(Concentric Zone Theory)’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동심원의 중심에는 구심력이 강한 금융·상업 기능 위주의 ‘중심상업업무 지구’가 형성된다. 그다음 바깥 지대에는 상업·주택·경공업 기능이 혼재된 점이 지대, 저소득층, 중산층, 고소득층 주택 지구 등이 차례로 입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중심으로 갈수록 지가가 높아져 금융·상업 기능 위주의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이 도심에 가까운 것은 통근의 편리성을 고려한 때문이며, 고소득층은 전원 경관과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외곽에 저밀도로 입지한다. 경관 측면에서는 중심에서 외곽으로 갈수록 높이가 차츰 낮아진다. 버제스의 이론은 현대 도시의 토지이용 계획 마련에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주거·상업·공업·녹지지역으로 구성된 현대의 도시 용도지역은 이 이론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지정할 수 있었다.

물론 현대 대도시는 버제스 교수 당시 단일 도심의 시카고보다 인구·면적이 몇 배로 성장했고, 도심도 여러 곳에 형성됐다. 이른바 ‘다핵도시’의 출현이다. 부산과 같은 인구 300만 명 이상의 도시는 다핵도시로 서면, 광복동, 해운대 등에 이미 다수의 도심·부도심을 갖고 있다. 부산의 지형 구조는 고지대로 바다, 강과 접한 연안 도시다. 동심원 이론이 현대 도시공간 구조에 시사하는 의미는 중심상업업무 지구로서의 도심은 기업·오피스 등 고층 건물이 들어서 도시 번영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고, 외곽 주거지역으로 갈수록 저층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방향은 현대 도시 관리의 교과서와 같은 지침이다.

현대 도시계획은 도시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에 바탕을 두고 용도지역을 도시기본계획에서의 민주적 목표 설정과 융합해 결정하고 있다. 도시기본계획은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해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관리하는 핵심 도구다. 주거지역엔 고층 건물이 있는데, 도심지역은 오히려 낙후돼 저층으로 구성된다면 경관 훼손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의 건강한 성장도 방해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 무분별한 용도변경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용도변경은 도시기본계획상 민주적으로 정한 목표에 배치된 공간 구조를 낳는다. 이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용도변경 혜택에서 소외된 다수의 시민에게 불평등을 초래해 실질적 정의마저 훼손한다.

부산의 현실은 어떤가. 주거지역 내 무분별한 용도변경으로 인한 수많은 고층 아파트 건설로 경관적 부조화가 심각하다. 도시정비 사업 때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무분별한 용도 상향 조치가 주요인이다. 특히 2000년 이후 성행한 고지대 재개발지역의 용도 상향은 부산의 고지대 경관을 훼손한 주범이다. 이로 인한 개발이익 환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해안가 지역의 초고층 건물로 인해 도시경관의 사유화도 심각해지고 있다. 도시경관은 미래 세대에 물려줘야 할 도시의 중요한 공공 자산이다. 도시경관을 위한 높이 관리가 공공복리 측면에서 매우 급한 이유다.

현대 도시계획의 주요한 패러다임인 ‘신도시주의 운동(New Urbanism)’의 기수로 도시계획가이며 건축가인 피터 캘도프는 “도시 관리는 공간구조에 따라 중심상업지역에서 외곽으로 갈수록 높이와 밀도 관리를 차별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져 도시의 정의와 공정함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도시들은 공간구조를 중심으로 도시경관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도시 성장의 질적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도시계획을 무시한 무분별한 용도변경이 공정함과 정의의 측면에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도시계획은 시민 간 공정한 약속이며 합의이기 때문이다. 약속과 합의가 지켜질 때 비로소 시민 누구나 부산의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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