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소감] 쥐어짜지 않고도 좋은 글 쓰는 작가로 남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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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이지은

좀비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그 좀비들 중 한 명을 집에 데려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을 데우고 컨디셔너를 듬뿍 써 머리를 박박 감긴 뒤 보송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면, 크럼프 댄스를 추듯 꺾인 관절과 악의만 남은 표정이 풀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달이 환한 밤에 왠지 부드럽게 몸을 꺾는 그를 발견하고 옥상에서 손을 흔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의 세계를 건너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늘 드러난 표정 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라서 이방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살아간다.

글을 쓰는 일은 아직 희열도 고통도 없다. 자연스러운 노동으로 여기고 있다. 내가 쥐어짜서 쓰면 독자도 쥐어짜며 읽을 것 같다. 언젠가는 뼛속 칼슘까지 탈탈 털어 문장을 쓰는 날이 오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얼굴과 감정을 훔치지 않고 스스로 내공을 쌓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천재나 영재로 불릴 나이는 넘었지만 노력하고 성장하는 사람으로 불릴 기회는 내게도 있어 다행이다.

이 수상 소감을 읽으며 씁쓸하게 다시 여백의 종이를 마주할, 나처럼 방구석에서 홀로 글을 써 온 모든 이들에게, 감히 안부를 묻는다. 곧 함께 걸어요. 힘내요. 제 글을 믿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내면이 건강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약력: 1982년 경북 청송 출생, 안동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석사, 2019년 제6회 한낙원과학소설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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