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반의반 값 크루즈선에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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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회장·대한민국해양연맹총재

프랑스대혁명 당시 혁명세력은 ‘선한’ 의도를 중시했고, 실제로 그런 정책을 펼쳤다. 가난과 불공정에 지친 프랑스 민중을 구제하기 위한 ‘반값 우유’ 정책도 그중 하나다. 프랑스의 모든 아이가 우유를 마실 권리를 갖고 있다는 주장은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 내면에는 가격을 통제해서 공급자의 탐욕을 억제하자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우윳값은 실제로 반값이 됐지만 그 ‘선한’ 정책은 오래가지 못했다. 적자를 보면서 목장주와 유통 상인들은 서둘러 젖소를 팔거나 도축했다. 사육 두수가 급감하니 우유 공급량은 급속도로 줄었고, 우윳값도 다시 올랐다. 목장주는 건초 가격 때문에 우유를 더 이상 싸게 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 대형 컨테이너선사 집중 지원

생존 몸부림치는 중소선사는 외면

코로나로 크루즈 기업 선박 대방출

조선산업 제2부흥기 계기 삼아야


혁명세력은 건초 가격을 반값으로 내리도록 강제했다. 건초값이 떨어지면 우윳값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효과 역시 짧았다. 건초업자들은 더 이상 손해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아예 건초를 불태워 없애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제는 우윳값만이 아니라 건초값도 급등했고, 더 나아가서 우유와 건초 공급이 급격히 줄었다. 이제는 무엇을 통제해야 할지 정권은 답을 찾지 못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를 철저히 무시한 결과였다. 시장은 혁명가들 생각처럼 ‘선한’ 의도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경제 정책의 참담한 실패로 혁명세력도 왕정세력처럼 단두대로 보내졌다. 시장 원리가 도외시되고 합의와 타협이 동반되지 않으면 어떤 선한 의도라도 독 묻은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선한 의도처럼 비친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부동산 가격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서두르면 ‘반값 우유’처럼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집을 두 채 이상 가졌다는 이유로 적폐로 모는 것도 그래서 용납하기 어렵다.

하루의 삶이 고단하다 못해 피눈물이 나는 시절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다. 코로나19로 각종 경제지표가 추락했다. 온 국력을 다 모아도 회복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무역 국가인 만큼 대외관계가 좋아야 수출도, 수입도 활발해진다. 해운업도 다르지 않다. 최근 중국 물량의 일시적 수출 호황으로 해운 운임이 오르는 등 반짝 호경기를 맞았지만 지속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갈등을 격화시키며 정책을 포장하려고만 든다. 해운 경기의 반짝 상승에 대해 자신들이 한국해양진흥공사를 만들어, 현대상선에 집중 투자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목적은 애초 특정 해운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 전체 해운업의 경쟁력 강화였고 체질 개선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공사를 통해 국책은행에 저당된 대형 컨테이너선사만을 집중 지원했다. 중소 선사나 특수해운업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국내 해운선사에 대한 ‘선한’ 지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기업 육성 전략에 다름이 아니라는 비판이 높다. 이번 해운 운임 상승도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인 호황에 불과하다. 사실 해운의 수익 보전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내 수출 기업의 경쟁력은 하락했다. 선한 정책이 정말 유효하려면 중소선사와 여객선사, 탱크선사 등 코로나19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같은 지원이 있어야 했다. 선한 정책이란 이처럼 마중물 역할에 충실한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새로운 기회가 포착되는 시장에 대한 정책 지원은 오랫동안 ‘선한’ 정책이 될 수 있다.

크루즈산업은 그런 점에서 바로 지금 역발상을 통해서 시장 진출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부가가치 조선산업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에서 크루즈산업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를 견디지 못한 글로벌 크루즈 기업들이 잇따라 선박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가격도 평소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크루즈산업 진출 시기를 맞은 우리나라로선 최선의 기회다. 크루즈 선박의 경우 워낙 고가라서 선사만의 노력으로 매입이 어렵다. 정부나 금융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컨테이너선과 달리 크루즈선에 대한 금융 지원이 불가한 것이 안타깝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경쟁국에서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의 크루즈 산업 진출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처럼 지금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때다. 크루즈 산업은 컨테이너선에 매몰된 국내 조선산업의 제2부흥기를 만드는 데에도 분명히 일조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경제는 투자에 실기할 경우 곧바로 평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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