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백신과 호르메시스로 본 레임덕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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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이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의 분수령이었다면 2021년은 ‘백신의 해’가 될 전망이다. 전대미문의 감염병을 백신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5일 “모더나 백신 구입 선급금 등 약 1조 원의 백신 구입비를 확보해 2월부터 의료진·고령자부터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치판의 ‘백신 정쟁’도 이쯤에서 일단락될지 주목된다.

백신(vaccine)은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배카(vacca)에서 유래했다. 우두법을 개발한 에드워드 제너(1749~1823)를 기리기 위해서다. 제너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이라는 관용어에 등장하는 마마, 곧 천연두를 소의 종기에서 뽑은 우두(牛痘)를 접종해 예방하는 길을 열었다. 큰 질병을 막기 위해 멀쩡한 사람에게 작은 질병을 일으키는 면역의학의 시대가 개막한 셈이다. 신축년 ‘흰 소의 해’에 암소에서 유래한 백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타이밍이 실로 절묘하다.


“노화는 치료 가능한 질병일 뿐이다”

스트레스·결핍 감수가 장수의 비결

노화생물학 최근 연구 성과서 증명

정치·권력의 노화는 레임덕 불러

문 대통령 통치 위기는 ‘내로남불’ 탓

협치·중립내각·사면 처방전 고려를


백신은 노화 예방으로까지 영역을 확장 중이다. 연말연시 코로나 봉쇄령에 따른 ‘집콕’ 생활 중 읽은 〈노화의 종말〉은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저자인 미 하버드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며, 노화를 늦추고 심지어 되돌리기까지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화에 맞서 ‘호르메시스(hormesis)’라는 개념도 소개한다. 약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몸이나 세포가 반응해 활성을 띠는 현상이 호르메시스다. “우리를 죽이지 않는 역경은 무엇이든 간에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운동은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로, 스트레스와 결핍을 달게 받아들여야 무병장수의 길이 열린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5년 노화 연구 끝에 얻은 무병장수의 비결 하나만 꼽으라면, “적게 먹어라”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의 인생이 맞이하는 노화가 질병이라면 권불십년(權不十年)의 권력 혹은 정치의 노화는 어떠할까.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회자하는데 노화생물학에서 한 시사점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일까. 마침 해가 바뀌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인 레임덕(lame duck)을 수군거리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배회한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5월 10일로, 꼭 1년 4개월 남겨두고 있다. 문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레임덕 또한 ‘운명’일까.

한국 증시가 소의 해를 맞아 개장 65년 만에 ‘코스피 3000’을 돌파해 주가 강세장인 불(bull·황소)마켓을 구가하는 가운데 찾아온 대통령의 레임덕 또한 타이밍이 절묘하다. 레임덕은 18세기 영국 런던 증권시장에서 유래했는데 주가가 오르는 장세를 황소, 내려가는 장세를 곰(bear), 채무 불이행 상태의 투자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각각 비유했다.

레임덕이 미국으로 건너가 집권 말기 지도력 공백을 뜻하는 정치 용어로 자리 잡은 것은 나라에 끼치는 해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떨어져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구조화하면 정책은 혼선을 빚고 정국은 갈지자걸음을 걷게 마련이다. 〈부산일보〉와 YTN이 공동으로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2월 22~23일 부산 시민 102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응답이 65.0%로 긍정 응답 31.8%의 배가 넘었다. 새해 들어 유사한 결과의 여론조사가 잇따라 레임덕 우려가 고개를 들 만도 하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강행 등에서 보았듯 ‘문빠’를 비롯한 지지자만 바라보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치가 화근이다. 오죽했으면 교수신문이 2020년의 사자성어로 내로남불의 한자 버전인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뽑았을까. 세상은 진영논리에 따라 양극단으로 갈렸다. 새해 정가를 달군 사면론도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갈린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관해 묻자 반대 48%, 찬성 47.7%로 팽팽하게 맞섰다. 국민 분열이 극단으로 치달은 인상이다.

우리 정치도 백신과 호르메시스라는 노화 연구의 성과를 배울 필요가 있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의 정부 감시라는 ‘작은 질병’을 일으켜 레임덕이나 정권 상실이라는 ‘큰 질병’을 막아 내는 예방접종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스트레스와 결핍을 달게 받아들이는 호르메시스, 생존을 위해서라면 소의 고름까지 짜내 인간 몸에 접종하는 백신의 모험과 도전이 한국 정치에 요구된다. 무오류주의와 순결주의에서 벗어나 다름을 인정하고 반대파를 끌어안는 통합과 상생의 통 큰 정치가 아쉽다. 협치든 거국중립내각이든 사면이든 더 늦기 전에 ‘대통합의 면역 처방전’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다.

forest@busan.com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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