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의무 아니다”… 위탁시설 고용 승계 손 놓은 부산시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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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가족지원센터 새 수탁자
“근로조건 낮춰서 직원 재계약”
시 “채용만 되면 문제 없다” 방관

부산시청 청사 건물 전경 부산시청 청사 건물 전경

부산시가 시설 운영을 위탁한 민간 법인이 고용 승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데도 ‘법적 의무가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법인이 ‘근로조건을 낮춰 재계약하겠다’며 노골적인 꼼수를 써도 시가 이를 묵인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회복지시설이 민간 법인에 위탁 운영되는 만큼 부산시가 업무 연속성을 위해 고용 승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시는 “올해부터 3년간 ‘부산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이하 센터)’를 운영할 새 수탁 기관으로 A협회가 선정됐다”고 12일 밝혔다. 기존 법인의 운영 기간이 끝나면서 새로 수탁할 법인을 공개 모집한 것이다. 센터는 발달장애인 부모 교육, 장애아동 결연 등 각종 장애인 가족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부산시 산하 복지시설이다.

문제는 해당 법인이 고용 승계를 제대로 하지 않음에도 시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산시 민간위탁 기본조례에 따르면 시는 수탁자가 바뀌더라도 시설장을 제외한 종사자의 고용 승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련 업무지침에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존 인력 고용 승계를 하게 되어있다. 시의 복지·행정 업무를 대행하는 시설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이에 부산시는 지난달 18일 ‘기존 직원의 근로 조건 후퇴 없는 전원 고용 승계 바람’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A협회에 보냈다.

하지만 A협회는 이런 지침을 무시하고 이달 11일 부산시에 ‘기존 센터 직원 전원을 퇴사 후 재입사시키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또한 올해 호봉은 상승 없이 지난해 호봉으로 책정하며, 상여금도 기존 120%에서 75%로 절반 가까이 깎겠다는 뜻을 밝혔다. 직원들은 이전보다 낮은 근로조건으로 일을 계속하거나 자발적으로 퇴사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A협회에게 어떤 권고도 하지 않고 있다. 시는 ‘채용만 이뤄진다면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센터 직원들의 근로조건이 일부 조정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고용 승계’는 채용 보장을 의미할 뿐 근로조건 유지는 법률상 의무가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수년간 센터 예산이 동결된 탓에 새 법인이 이전처럼 인건비를 지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사회단체는 부산시가 위수탁 기관에 고용 승계 책임을 따지지 않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반발했다. 사회복지연대 김경일 사무국장은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재계약을 통보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라’고 하는 게 정상적인 고용 승계인가”라면서 “부산시는 대부분 사회복지시설을 민간 위탁으로 운영 중인데, 이 시설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고용 승계 여부를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는 바뀐 위수탁 기관이 의무적으로 '포괄적 고용승계'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부산 연제구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이현우 변호사는 “특히 사회복지시설은 업무 연속성이 중요한 만큼, 법인이 바뀌더라도 포괄적 고용 승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에 명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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