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시 갯가,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
이자영 경제부 해양수산팀장
다시 갯가다. 갯가의 사전적 의미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물가’. 부산 지역 언론사들은 해양수산 담당 기자들의 출입처를 뭉뚱그려 ‘갯가’에 비유한다. 어떤 선배들은 해양수산 기자들이 지나가면 “짠내가 진동한다”고 놀리기도 한다.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갯가는 여전히 짠내나도록 고되고 아픈 일투성이다.
해양수도를 표방하는 부산에서 해양수산은 주요 산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해양수산업에 종사하는 종사자들은 그만한 인정과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선원들이 대표적이다.
바다 낀 부산, 각종 사건사고 되풀이
‘한국케미호’ 이란 억류 한 달 가까이 돼
미국·이란 갈등에 애꿎은 선원 ‘희생양’
정부 적극 대처로 조속한 사태 해결을
지난해 연말 열린 웹토론회 ‘오션 이슈 토크’에서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인정이 필요하다. 파독 광부들과 비교해도 선원이 국가에 기여한 것이 적지 않은데, 선원은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선원박물관을 설립해 선원들의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자칫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는 제안이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노고와 기여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HMM(옛 현대상선) 선원노조는 파업을 예고하고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 속에서 교대조차 어려운 선상 생활을 하고 있지만, 회사가 이들의 임금을 몇 년째 동결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조는 “선원 부족으로 장기간 승선을 하며 가족들과 떨어져 수감 생활과도 같은 선상 생활을 하고 있는데, 회사는 희생만을 강요하며 처우 개선을 해 주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일부 선원은 외국의 대형 선사들이 필리핀 선원에게 주는 급여보다도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HMM 노사는 새해를 몇 분 앞두고서야 겨우 극적인 협상 타결을 이룰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인정이나 처우는커녕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피랍이나 억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선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씩 피 말리는 ‘선상 감옥’ 생활에 내몰린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에 있는 선박 유류 공급회사의 배가 남중국해 해상에서 중국 해경에 승선 검색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말이 승선 검색이지, 선원들 입장에서는 억류나 다름없었다.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한 언론사가 이 배가 북한에 석유를 밀수출 하는 등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중국 당국에 단속을 당했다는 오보를 내면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선원들이 8일 동안 억류된 것도 억울한데, 밀수출 이야기까지 나오자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4일부터 이란에 억류돼 있는 ‘한국케미호’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해역 환경오염 문제를 내세웠지만, 선박관리회사 측은 “4주가 다 되도록 해양 오염과 관련된 그 어떤 자료도 받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현재로선 미국의 대 이란 제재로 우리나라 은행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 약 70억 달러가 억류의 원인으로 추정될 뿐이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라는 국제 정세 탓에 애꿎은 선원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한국인 5명을 포함한 선원 가족들이 겪고 있을 고통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선박관리회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배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던 선원들이 지금은 덱 정도는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고, 가족들과 통화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외교부를 중심으로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병아리 기자’ 시절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마부노호’ 사건을 취재하러 아프리카와 중동을 오간 적이 있다. 2007년의 일이다. 해적에 납치된 한국인 4명 등 선원 24명은 174일이라는 긴 억류생활 끝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당시 정부가 해적과의 협상은 없다는 입장이어서 선원노련과 부산 시민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모금운동까지 벌어졌다. 선원 가족들과 예멘까지 동행해 눈물 바다가 된 재회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슬픈 사실은 비슷한 사건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 대형 쇼핑몰이 개장할 때면 빨간 속옷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장면이 종종 보도된다. 만선이 된 고깃배가 빨간 깃발을 꽂고 돌아오던 관습의 영향으로 ‘빨간색=재운’이라는 믿음이 퍼진 탓이라고 한다. 사건사고가 많은 바닷가 동네 특유의 미신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제는 이런 미신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갯가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바다를 만들어야 할 때다.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 돼야 하고, 정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처와 외교력이 바닷가 사람들의 힘이 돼 줘야 한다. 한국케미호 선원들의 무사 귀환을 촉구한다. 2young@busan.com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