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나라 달력이 중국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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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설 명절에 대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고민할 때다. 부산일보DB 설 명절에 대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고민할 때다. 부산일보DB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언제일까? 이렇게 물으면 누구나 당연한 듯이 설과 추석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설과 추석은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 되었을까. 일전에 다른 지면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예전에는 설과 추석만이 아니라 단오나 한식도 큰 명절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단오나 한식을 따로 기념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 대신 설과 추석이 더 큰 명절로 대접받는다. 이런 변화는 바로 산업화 때문이다. 농경 시대에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대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다가, 산업화 때문에 자녀들이 도시의 공장에 취업하면서 요즘 보는 것과 같은 귀성 문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문제는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라 노동자들이 고향에 한 번 다녀오려면 사나흘 너머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 일요일도 국경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되던 때라 기업 처지에서는 노동자들을 자주 고향에 보내 줄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명절에도 선택과 집중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단오나 한식은 물론 청명이니 유두니 크고 작은 명절들은 모두 사라지고 설과 추석만 남게 된 것이다. 명절이라고 하면 흔히 상 가득 차린 음식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퇴계 선생 종가의 차례상을 보니 술 한 잔, 포 한 접시, 과일 한 접시뿐이다.


산업화 결과 명절의 선택과 집중

한식, 단오 없어지고 설과 추석만

코로나19 시대 3000만 이동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시대

명절의 사회적 비용을 고민할 때


내가 어렸을 때는 양력 설은 신정, 음력 설은 구정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때는 부모님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까지 일일이 세배를 드리고는 했다. 우리 선조들은 음력만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요즘 같은 달력이 없었을 뿐 농사는 한 해 동안의 계획이 필요한 일이어서 지구의 공전 주기를 1년으로 계산하는 양력을 사용한다. 그 대신 달의 공전을 한 달로 계산하는 음력은 일상 생활에 쓸모가 많아 더 자주 사용했을 뿐이다. 영화 〈천문〉에서 세종과 장영실이 조선의 달력을 만들고자 했던 이유도 중국의 달력이 조선의 절기와 맞지 않아 농사에 불편이 컸기 때문이다. 나라 말씀이 아니라 나라 달력이 중국과 달랐다고나 할까.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600명을 넘었다가 지금은 다시 300~400명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확진자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가 꼭 설 때문인지는 모른다. 다만 정부에서 설 연휴 기간 동안 고향방문이나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2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이동한 일은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한다. 그나마 예년에 비해서는 30% 이상 줄어들어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명절이라고 3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이동하는 일이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지나친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솔직히 어렸을 때 나는 명절에 고향에 가는 일이 싫었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한나절 너머 고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30분이면 갈 수 있다. 다만 공단이 건설되면서 고향이 아예 없어진 것이 문제지만. 아무튼 과거에야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고향의 부모님을 뵙고 형제자매들이 모일 기회가 명절밖에 없으니 그랬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사태가 이토록 엄중한 가운데 굳이 온 국민이 피난민처럼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낼 이유가 무엇일까. 더군다나 과거에는 음력을 사용했으니 설이든 다른 명절이든 음력으로 기억하는 일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쓰지도 않는 음력 설을 굳이 쇠어야 하는 이유는 더 모르겠다. 마트에 가면 일년 내내 오곡백과가 넘치는데 굳이 추수를 감사드리는 추석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농경 사회가 아닌데 무엇을 기념하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어서 설령 이제는 그럴 만한 필연성이 없다 하더라도 늘 해 오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명절의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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