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초회복
이집트 람세스 5세부터 헤아려도 3000년간 지속된 천연두. 20세기 들어서도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1958년 동서냉전 당사자인 미국과 소련이 ‘천연두 근절 계획’을 공동 발의했다. 이후 동결건조 백신이 개발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근절됐다’고 선언했다. 국제적인 협조와 의료·과학계, 시민사회의 협력으로 가능했던 역사다.
전염병이나 재난, 경제난이 악영향만을 끼쳤던 건 아니다. 가장 참혹했던 페스트(흑사병)로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희생됐다. 이 감염병은 토지 가격의 하락, 농노 계급의 임금 상승, 지주의 몰락을 일으키면서 중세 종식의 한 원인이 됐다. 이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으로 유럽을 변화시켰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보면, 근육 손상으로 힘이 약해지는 시점을 느낀다. 이때 제대로 회복하고, 근육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운동량을 줄이면서 적절한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이런 ‘전략의 전환’을 통해 근력이 강화되고, 더 나아지는 단계로 변하는 것을 ‘초회복’이라고 한다. 민간 싱크탱크 ‘랩(LAB)2050’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극복 전략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농구, 테니스, 축구 경기에서 공이 바닥을 치고 튕겨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바운스 백(Bounce Back)’도 초회복을 상징한다. 인류가 감염병, 전쟁, 비즈니스 등의 시련과 역경에서 위축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전략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백신 접종이 오늘 아스트라제네카부터 시작됐다. 집단면역이 형성돼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초회복의 희망이 싹트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부터 ‘회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상으로의 복귀는 흥분되지만, 어떤 사회로 회복할 것인가는 의문투성이다. 우리 눈앞에는 자산 불평등, 양극화, 희망사다리 붕괴, 대량 실업, 낙오자들의 정신적·경제적 트라우마, 국가재정 부담 등 숱한 난제가 쌓여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극복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오늘부터 우리가 어떻게 초회복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국가와 개인의 의지와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변화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고, 함께 하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지금의 고민과 초회복 과정이 제2, 제3의 위기를 대비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