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문화재로 세금 납부” 다시 불 지피는 물납제 논란
11일 미술협회 등 관련 세미나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 ‘마망(엄마)’. 부산일보DB미술품·문화재의 조세 물납제 도입 논의가 수면 위로 올랐다.
지난해 5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국가 보물 두 점을 경매에 내놓으면서 문화계 물납제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미술 애호가였던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처리 문제가 세간의 시선을 끌며 논의에 불을 붙였다. 국보 217호 정선 ‘금강전도’, 알베르토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Ⅲ’, 프랜시스 베이컨 ‘방 안에 있는 인물’ 등 이건희 컬렉션의 감정 추정가는 2조~3조 원대에 이른다.
미술품·문화재 물납제는 납세자가 조세 채무를 금전으로 납부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미술품과 문화재로 세금을 대신 납부하는 제도이다. 문화계는 미술품·문화재가 현물 시장과 해외로 흩어지는 것을 막고,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에 영구 보존해서 전승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일 한국예총, 한국민예총, 한국미술협회, 한국박물관협회 등 12개 문화예술단체와 전직 문체부 장관 8명이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조속한 제도화를 촉구하는 대국민 건의문을 내기도 했다.
한국고미술협회는 한국미술협회, 한국화랑협회와 공동으로 지난 11일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이광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 최병서 동덕여대 명예교수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이광수 이사장은 “국가지정문화재 4900여 건의 50% 이상을 개인이 소유 중이며, 전국 사립박물관·미술관 소장 자료 440만 건의 상당수가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대물변제 제도는 지역적 가치가 탁월한 미술품과 문화유산도 포함한다. 미국은 기부받은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 중심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 이사장은 “물납제를 통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미술 문화 자산을 보호하고 공공자산화해 국민 문화 향유권을 확대하고 관광자산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수 교수는 미술시장 산업화 지원 차원으로 물납제에 접근했다. 서 교수는 “미술시장 산업화를 위해 세제 개편 등 보다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병서 명예교수는 “물납제 실현을 위해 미술품 시장가치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공적 감정평가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최 명예교수는 삼성가를 향해 "대물변제의 방식으로 단순히 미술품만 내어놓기보다는 출연할 미술품을 전시할 수 있는 좋은 미술관을 지어서 국립 혹은 시립미술관으로 귀속시키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세미나 중에는 물납제 삼성가 특혜 시비를 의식해 "물납제 추진과 삼성가의 상속세는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긋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미술품·문화재 물납제 도입이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삼성에 특혜를 주는 제도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어 향후 물납제 도입 여부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오금아 기자 ch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