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봄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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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를 기피하는 사람이 있다. 각종 병균이나 기생충에 노출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지저분한 도랑이나 하수구에서 자라던 미나리를 떠올려서 그럴 테다. 그러나 세상사는 다 생각하기 나름인 법. 같은 모습의 미나리에서 어떤 이는 선비의 기상을 본다. 더러운 곳에서 자라지만 오히려 주변을 깨끗이 하고 여러 곤경에도 굳세게 자라 푸르름을 잃지 않는 기질을 본받겠다는 요량이다.

오늘날에는 미나리를 두고 기생충 운운하는 게 괜한 걱정일 가능성이 크다. 시중에 팔리는 미나리는 더럽게 키우지 않는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체계적으로 키워진다. 유명한 청도군 한재 미나리밭에서 재배되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기생충 같은 찜찜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힘들 테다.

20~30년 전만 해도 부산 근교에서 미나리는 언양의 것을 최고로 쳤다. 가지산 맑은 물에서 자라 특유의 깔끔한 맛과 싸한 향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언양 주변이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으면서 미나리의 명성은 청도군 한재로 넘어갔고, 한재 미나리의 맥은 다시 하동군 횡천 등 여러 갈래로 이어졌다. 언양 미나리도 근래 수질 개선을 통해 옛 영광을 되찾는 중이다.

미나리가 혈액을 맑게 하고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영양 식품이라 알려졌지만 굳이 그렇게 어려운 부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하다. 봄날 갓 자라 두세 잎쯤 돋은 것을 초고추장에 찍어 날로 먹는 것이 진미지만,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에 둘둘 말아 먹는 것도 별미다. 그렇게 와사삭 씹으면 싸한 향이 입안에 확 퍼진다. 말 그대로 봄이 씹히는 것이다. 요즘엔 워낙 많은 양을 비닐하우스 등에서 속성으로 키우다 보니 옛 향과 맛에는 못 미치는 듯하지만, 그래도 봄철 나태해진 몸과 정신을 생기롭게 만드는 데는 미나리만 한 게 없다.

이달 들어 미나리가 엄청 잘 팔린다는 소식이다. 한 유통업체에선 작년 이맘때보다 2배 가까이, 지난달보다는 무려 8배나 매출이 급증했단다. 가히 폭발적인 인기라 하겠다. 업계에선 영화 ‘미나리’가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잇달아 상을 받으면서 미나리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커진 덕분으로 본다.

이유야 어떻든 코로나19로 연일 우울한 분위기인데 모처럼 상큼한 봄 내음 나는 소식이라 반갑다. 봄은 다시 찾아왔고, 그 봄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봄을 제대로 즐기려면, 우선 먹는 것부터 봄다워야 한다. 이즈음 가장 봄다운 먹거리가 바로 미나리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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