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말에 대한 징벌, 입법 균형추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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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여당 주도로 이른바 ‘언론개혁법’ 혹은 ‘언론민생법’이라 부르는 일련의 입법들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언론개혁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법률 개정안들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다. 인터넷에서 이용자가 허위사실유포나 기타 불법 정보로 명예훼손 등의 손해를 입힌 경우 피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개혁 ‘징벌적 손해배상’ 개정안
입법 필요성 불구하고 논란 없잖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한 규제 시도
처벌·권리 제한 규정 내용 명확해야

법률안 성안 앞서 통찰적 검토하고
미디어 지원책·법제도 재디자인을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보통신망 속에서 발생하는 허위사실유포나 불법 정보 유통으로 인한 피해 정도가 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구제 방안도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가슴 아픈 사건이 적지 않았고, 뭔가를 고쳐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도 커졌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법안 등장은 우리 스스로의 자정작용을 우선하지 못하는, 기다려 주지 않는 현실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이 개정안에 대한 최대의 논란적 쟁점은 표현의 자유 충돌에 기인한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리에 비추어 볼 때, 개정안 내용은 상당히 과격하고 급진적인 규제 장치의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개정안에 대해 찬성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러 학자뿐만 아니라 언론 현업 4단체도 개정안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입법은 필요성과 정당성만으로 구체적 내용까지 항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의 헌법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이 제한 시도는 엄격하게 위헌성을 심사받아야 한다. 선택된 수단으로 인해 표현에 대한 위축 효과가 초래된다면 결국 건전한 비판도 억압될 수 있고, 언론보도의 궤도도 신속한 사실 보도가 아니라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친 보도로 축소될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입법에 대한 필요성이 커서 어떤 법률안을 성안하는 경우, 입법자는 관련된 모든 법규범에 대한 통찰적 검토를 우선해야 한다. 새로운 규정의 도입이 전체 법체계 내에서 조화와 균형을 갖출 수 있는지, 부작용의 존재와 정도는 감수할 만한 것인지, 법 규정으로서 기본적 요건을 충족하였는지 등. 그리고 이 법 규정이 지금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의 숙고임은 물론이다.

이 개정안도 그랬어야 한다. 새로이 발생하는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방안들이 현재 없는가를 먼저 검토했어야 한다. 현행 법제에서도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규정이 있고,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적시의 경우도 명예훼손 책임을 묻고 있으며, 사이버 명예훼손은 가중처벌된다. 그런데 또 새로운 수단이 필요한 것인가.

처벌이나 권리 제한 규정의 경우에는 요건의 내용이 명확해야만 한다. 어떤 경우에 처벌이나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것인지를 일반인 이용자가 알 수 없다면, 또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예측하기 어렵다면, 자체로 형식적인 위헌성을 벗어날 수 없다. 개정안상의 손해배상책임 대상이 되는 불법 정보의 범위가 넓은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이다.

한편 이 개정안의 손해배상책임제도는 입증책임의 ‘전환’구조를 택했다. 법제에서 손해 발생의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손해 발생을 주장하는 자의 몫이다. 그런데 개정안 규정은 언론사 보도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까지 적용된다는 점에서, 입증책임 전환의 적실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의료소송이나 환경소송에선 입증책임을 상대방에게 전환하는 예외적 구조를 취한다.

여러 법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허위 조작 정보 유통으로 인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이러한 제도 도입을 긍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언론과 국민의 권력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전략적 봉쇄 소송’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가 동시에 규정되어야만 한다.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은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막대한 액수의 배상을 통해 언론과 국민을 억압하는 행태이고, 손해배상액 실제 액수 그 자체보다도 소송 과정의 부담감을 통해 말문을 막고자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소송봉쇄금지법 도입 주장의 의미가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정보의 통제가 쉽지 않고, 유통과정에서의 불법적 상황은 제한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구제는 분명히 중요하다. 1차원적인 면에서 볼 때, 말문을 막으면 효과는 거의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사회의 건강함은 정보주권자인 시민들의 자정적 노력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건전한 미디어 문화를 만드는 지원책과 더불어 관련된 전반적 법제들을 통일적으로 정리하고 다듬는 체계적인 개정 작업으로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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