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비욘드 랭군’을 넘어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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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12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야간 시위대가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야간 시위대가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얀마 사태의 주름이 깊어 간다. 무력 진압에 따른 사망자가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군부 쿠데타 한 달 보름여 만이다. 미얀마는 저 멀리 인도양 동북부 벵골만에 접한 나라다. 그 이름(당시 버마)이 낯설지 않은 건 1988년의 서늘한 기억 때문이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미얀마 거리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군사정권의 무자비한 총검에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금된 이가 2만여 명, 국외 탈출자가 200만 명 이상이었다. 반정부 시위가 정점에 달한 그해 8월 8일을 따서 ‘8888 민주항쟁’으로 부른다.


미·중 신냉전 각축, 역학관계 복잡

민주화는 소수민족 문제에 발목

미얀마 사태, 출구 찾기 쉽지 않아

식민 지배·군사 독재 경험 공유

한국이 연대의 길 모색했으면

민주주의 근본 가치 재성찰 기회


당시의 미얀마 사태를 다룬 영화가 존 부어맨 감독의 1995년 작품 ‘비욘드 랭군’이다. 랭군(양곤)은 미얀마의 옛 수도다. 미국인 여의사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다. 영화는 고발정신으로 충만하나 디테일에서 한계가 역력하다. 야만적인 현실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시각도, 저항 세력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막연한 휴머니즘과 개인적인 깨달음이 있을 뿐인데, 동양에 대한 국외자의 이런 시선을 ‘오리엔탈리즘’이라 봐도 무방하다. 33년 만에 미얀마 사태가 데자뷔처럼 다시 일어났다. 우리 역시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미얀마를 보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소식을 전하는 주요 외신들은 죄다 서방 언론이다.

미얀마는 불과 6년 전까지도 군부 통치의 나라였다. 1886년부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독립 후엔 연쇄적인 군부 쿠데타에 시달린 어두운 역사가 있다. 2015년 비로소 평화적인 국민선거가 열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 세력 주도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25%를 군부에 할당해 주고 얻어 낸 불완전한 출범이었다. 오늘날 군부 쿠데타는 이 역사마저 되돌려 독재정권으로 회귀하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나서면 좋을 것 같지만, 사태는 실로 복잡하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는 과거 영국이 불러들인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있다. 군부는 1991년부터 이들에 대한 대대적 소탕에 들어갔다. 학살과 강간 등이 자행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사실상의 ‘인종 청소’였다. 아웅산 수치와 민주화 세력은 여기에 눈을 감았다. 대다수 국민이 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비난은 당연한 것이었다. 수치의 노벨평화상을 박탈하라는 요구까지 일었다. 군부는 소수민족 문제를 고리로 수치를 옭아매려는 심산이었던 것인데, 수치는 국제적 여론 대신 국민적 지지를 선택해 결국 2015년 선거에서 승리를 끌어냈다. 그러나 소수민족을 억압한 전력은 민주화 열망이 짓밟히는 지금, 아킬레스건이 됐다.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가 먹혀들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미묘한 국제적 역학관계도 미얀마의 앞날을 흐리게 한다. 미얀마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미·중 신냉전의 각축지로 부상했다. 미얀마 군사정권과 전통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가 중국이다. 1980년대부터 미얀마의 항구·해군 시설 이용권을 확보해 인도양 벵골만에 대한 전략적 영향력을 키워 왔다. 미국은 미국대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남쪽에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 핵심 지대가 미얀마다. 미국으로선 친미 정권의 등장을 탐낼 만하다.

그런데 미얀마 군부는 2011년 무렵부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꾼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위험성을 인식한 변화다. 반대로 로힝야 사태를 계기로 서방 여론에 부담을 느낀 수치는 중국에 접근하는 모양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터이다. 국제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각국은 저마다의 셈법에 빠져 있다. 이런 전략적 선택이 교차하는 복잡한 사정 속에서 미얀마 사태가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민주적 권력의 통제를 거부한 군의 쿠데타는 엄연한 폭력이다.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당성을 상실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지금의 미얀마는 대단히 위험하다. 민이 군을 통제할 수 있는 정당성의 확보가 중요할 텐데, 산고 끝에 독자적 민주주의를 일군 한국의 경험이 미얀마와 공유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정치·경제적 이익만 좇을 게 아니라 식민 지배와 군사 독재, 유혈 항쟁 등 유사한 경험을 가진 나라로서 연대의 길을 모색하는 건 어떤가. 그러기 위해서는 국외자, 방관자의 시선이 아니라 공감이 바탕이 된 세계 시민의 심성이 절실하다. 마침 엊그제 우리 정부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첫 제재에 나섰다. 보다 실효성 있는 조치와 국제사회의 동참을 넓히는 외교적 노력이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민주주의 근본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성찰할 소중한 기회다.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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