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정신의 뿌리는 ‘의리’와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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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부산이 오롯이 지금의 부산이 아니듯, 앞으로의 부산은 지금의 부산이 아닙니다. 과거-현재-미래의 부산, 그 속에서 변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겁니다. ‘창조도시론’을 주창한 찰스 랜드리는 한 도시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도시 정신’(Soul of City)이라 했습니다. 또 그는 한 도시를 알려면 시민의 정신, 기질, 예술적 내용을, 물리적으로는 건축의 저변을 보라고 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를 맡아 부산학 정립에 힘써왔으며, 이에 앞서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산복도로 르네상스 등 도시재생사업도 추진한 바 있는 김형균(전 부산학연구센터장) 박사. 그는 이 변하지 않는 것에 주목해 최근 <부산정신 부산기질>(호밀밭)을 펴냈다.

전 부산학연구센터장 김형균 박사
‘부산정신 부산기질’서 주장
집합성·투박성·무뚝뚝함이 기질
“지역 특성 살릴 사회적 자산”

부산연구원 퇴임 후 보수동 책방골목 한쪽에 마련한 조그마한 공간 ‘부산학당’에서 김 박사를 만났다. “도시재생사업을 하다 보니 전국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역마다 사람들의 스타일이나 기질이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부산사람의 정신이나 기질은 뭘까?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 갈증도 느꼈고요. 무엇보다 부산학을 공부하다 보니 이를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쓴 동기다.

저자는 어떤 게 부산정신이고 부산기질인지 사회학자답게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바라본다. 나아가 광범위한 사료와 문헌 등을 통해 그 근거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부산정신을 ‘의리’와 ‘저항’이라고 본다. 중세의 왜관을 중심으로 쭉 이어져 온 상업 도시의 DNA, 도시의 지정학적 변방성과 침탈의 역사, 그리고 이별의 일상화라는 도시적 특성이 유기적으로 작동해 부산 특유의 생활 원리인 의리정신과 저항정신이 배태되고 표출돼 왔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 부산의 의리정신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는 부산사람들이 잊고 있는 부산의 정체성 중 하나가 상업 도시의 전통이라고 말한다. “부산의 의리정신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상업정신은 철저한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이별이 일상화된 곳일수록 의리는 더욱 소중한 생활덕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부산 연제구 거제동 거제시장 상인들(거상친목회)이 1985년 광복절에 세운 군의소리(君義小利·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비석이다.

부산사람들의 저항정신은 어제오늘 형성된 것이 아니다. 부산과 영남이 처한 역사적 기원과 흐름 속에서 발전해 왔다. 특히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조선시대 인조반정이었다. 이후 부산은 반역향(反逆鄕)으로 낙인찍히면서 저항정신이 체질화됐다는 게 김 박사의 주장이다. 개항 이후에도 일본의 침략을 가장 크게 받으면서 이에 저항하는 근대적 형태의 저항정신이 이어졌다. “부산사람들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고, 저항을 위해서는 의리가 필요했습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지역정신이 해당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독특한 사고, 심리, 관습의 총체라면, 지역기질은 그러한 정신이 발현되는 행위이자 행동을 뜻한다. 그렇다면 김 박사는 책에서 어떤 게 부산기질이라고 생각할까. 그는 크게 한솥밥형 집합성, 바닷가 형 투박성, 고 맥락형 무뚝뚝함, 이 3가지로 집약된다고 말한다. 흔히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에서는 한솥밥형 집합성을, 부산 사람들의 거친 말투에서는 바닷가 형 투박성을 읽어낸다. 또 통상 말보다는 행동과 눈빛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서는 ‘고 맥락형’의 무뚝뚝함을 발견한다.

그러면 과연 부산정신과 기질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김 박사는 부산의 정체성과 부산인의 지역기질에 관한 풍부한 논의가 펼쳐질 이른바 ‘부산학의 황금시대’가 오길 기대했다. 그 시기가 오면 지역정신과 지역기질에 대한 논의가 숙성될 수 있고 향후 지역정신과 기질이 사회자산으로서 물리적 인프라보다 더 강력한 소프트 인프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정신과 기질은 도시의 영혼이다. 이에 대한 체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지역발전 전략만이 지역의 강점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오랜 시간 계승·변형된 지역의 특성을 더욱 잘 살릴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 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내비쳤다. “이번 책에선 문학이나 예술 속에 나타난 부산정신과 기질을 살펴볼 기회가 부족했습니다. 앞으로는 문학 쪽 접근을 통해 부산정신과 기질을 살펴볼까 합니다.”

글·사진=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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