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중장년 마음 훔친다… ‘로맨스 스캠’ 주의보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한 A 씨가 ‘Hangyeol(한결)’이라는 이름을 사칭한 일당에게 받은 SNS 메시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접근한 이후 자신의 거짓 사연을 털어놓은 모습. A 씨 제공
부산에 사는 40대 여성 A 씨는 지난 8일 SNS 인스타그램에서 ‘낯선 이성’의 메시지(DM)를 받았다. 주인공은 자신의 계정에 ‘Hangyeol(한결)’이라는 이름을 밝힌 남성. A 씨가 ‘누구인데 메시지를 보내냐?’고 답장하자 한결은 ‘프로필 사진을 보고 친구가 되고 싶어 연락했다’고 재차 메시지를 보냈다.
한결은 그렇게 A 씨에게 접근한 뒤 카카오톡을 통해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한국에서 4살까지 살다가 삼촌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고, A 씨와 또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버지는 선생님, 어머니는 병원에 다녔는데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국을 떠나야 했다는 사연도 털어놨다.
한결은 뉴욕(New York)에서 보내는 자신의 일상을 A 씨에게 공유하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는 ‘한국에 가면 해변에서 수영을 가르쳐줄게’, ‘너처럼 아름다운 친구가 있어 행복해’ 등 달콤한 말도 과감하게 던졌다. 또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와 고급 차량 등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했고, 심지어 샤워 후 가운을 걸친 자신의 모습을 보내주기도 했다.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한 A 씨가 ‘Hangyeol(한결)’이라는 이름을 사칭한 일당에게 받은 SNS 메시지. 자신의 고급 차량을 보여주며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차량 사진을 찍어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A 씨 제공
□실체가 드러난 ‘한결’
그렇게 며칠 동안 대화를 이어나간 한결은 갑자기 ‘좋은 소식’이 생겼다며 A 씨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 정부와 회담 이후 석유 사업 계약을 따내 수만 달러 보너스를 받게 됐고, 6주 동안 한국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결은 A 씨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고 싶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A 씨는 간단하게 초콜릿이나 캔디는 괜찮다며 주소를 알려줬고, 한결은 ‘아르곤 회사(Argon Company)’에서 국제 배송으로 택배가 도착할 것이라고 답했다.
A 씨는 지난 12일 오전 7시께 아르곤 회사 계정으로 한국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그런데 특급 배송이라 2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A 씨는 한결에게 택배를 거절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러자 한결은 ‘택배 안에 돈이 들어있다’며 200만 원을 입금해도 괜찮다고 A 씨를 재차 설득했다.
결국 A 씨는 아르곤 회사에서 알려준 계좌번호로 돈을 보냈다. 그런데 아르곤 회사는 ‘세관에서 택배에 현금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수수료 678만 3900원을 보내야 택배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A 씨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돈을 더 이상 보내지 않고 경찰을 찾았다. 돈을 보내게 된 경위를 경찰에게 털어놓은 A 씨는 자신이 전형적인 수법으로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결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로맨스 스캠’ 피해를 당한 A 씨가 택배 운송 회사를 사칭한 일당에게 받은 SNS 메시지. A 씨가 받을 택배에 돈이 들어있는 사실을 세관 직원이 확인했다는 거짓말로 수수료 678만 원을 요구하고 있다. A 씨 제공
□중장년 SNS 주의보
A 씨가 당한 사기는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었다. 로맨스(사랑 이야기와)와 스캠(무역 거래 대금 등을 가로채는 온라인 사기 수법)의 합성어로, SNS를 통해 이성에게 접근해 환심을 산 뒤 돈을 가로채는 사기 방식을 뜻한다. A 씨는 “어린 나이에 입양이 돼 힘들게 살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약해졌다”며 “꾸준히 일상을 알려주며 따뜻하게 말을 걸어와 어느 순간 친구라 여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은 주로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사례가 많은 편이다. 현지에서 SNS로 한국인에게 접근한 뒤 번역기 등을 이용해 대화를 이어가고, 한국에 들어온 난민 등이 개설한 계좌를 이용해 돈을 받는 수법이 많다.
이들은 보통 SNS 프로필에 가짜 사진을 올린 뒤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으로 가장을 한다. UN에서 근무하는 의사나 군인 등을 사칭하고, A 씨와 같은 수법뿐만 아니라 ‘비행기 기름값’이 필요하다고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로맨스 스캠’ 피해는 중장년을 중심으로 잇따르는 편이다.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젊은 층은 처음부터 메시지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 중장년층이 사기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대화를 시작한다”며 “해외에서 친구가 되고 싶다고 접근하거나 번역기를 돌린 듯 말투가 이상하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종교가 같다고 강조하거나 따뜻한 말을 지속적으로 건네다가 돈을 요구하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며 “누군가 과시하며 보내는 사진을 과신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