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선거철 또 호출당한 ‘엘시티 망령’ 이젠 털고 가야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의 특혜 분양 의혹이 또 제기돼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사진은 엘시티 전경. 부산일보DB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의 특혜 분양 의혹이 또 제기돼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사진은 엘시티 전경. 부산일보DB

부동산 문제로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는 대한민국에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은 온 국민에게 ‘집단 울화병’을 일으켰다. 사건의 파장은 서울·경기를 넘어 부산 강서 지역 등 전국 곳곳으로 번져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있다.

그런데 부산에선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정략적인 잇속과 맞물리면서 해안가 난개발의 대명사로 불리는 해운대 엘시티(LCT)의 분양 관련 특혜 의혹이 또 불거졌다. 엘시티가 LH 사태와 부산시장 선거 정국을 맞아 또다시 부동산 의혹의 마당으로 호출돼 나온 것이다. 가히 ‘엘시티의 끈질긴 망령’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지역에서는 이참에 뒷말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엘시티는 물론 부산시민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제기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싸라기 땅 초고층 건물

‘불가사의’했던 프로젝트

사업 시작부터 온갖 잡음

수년 전 특혜 분양 의혹 제기

선거정국 맞아 또 불거져

이번엔 130명 명단 나돌아

“로비용” “영업관리용” 팽팽

꼬리표처럼 붙는 ‘비리 딱지’

부산 시민 위해서라도

의혹 말끔히 해소해야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2016년 8월 부산지검 동부지청 앞에서 엘시티 관련 의혹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2016년 8월 부산지검 동부지청 앞에서 엘시티 관련 의혹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사업 시작부터 오명 안고 출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맞닿은 옛 한국콘도 자리에 들어선 엘시티는 그 규모로는 단연 압도적이다. 최고 101층의 랜드마크 타워 1동과 85층의 주거 타워 2동으로 구성된 엘시티는 2019년 말 완공돼 현재 주민들이 입주한 상태다. 부산에서 진행된 단일 건물 공사로는 최대 규모였던 만큼 시작부터 부산은 물론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엘시티는 처음 사업 추진 때부터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불가사의’한 프로젝트였다. 해운대 바닷가의 금싸라기 같은 땅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다는 자체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엘시티가 들어선 땅은 ‘중심지 미관지구’(현재는 시가지 경관지구)로 높이 60m 이상의 건물이나 공동주택을 지을 수 없었다. 따라서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면 이 일대의 고도제한 완화, 부지 확장 개발을 위한 도시계획 변경,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 통과, 수천억 원대의 대출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모두 부산시와 해운대구, 금융권 등의 순조로운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엘시티는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모두 통과하고 진행됐다.

부산시는 고도제한을 풀어 줬고, 환경영향 평가도 면제해 줬다. 해운대구는 사업 부지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변경했고, 교통영향평가까지 도움을 줬다. 군인공제회는 자금이 없던 엘시티 시행사에 3200억 원을 빌려 줬고, 부산은행도 별다른 담보 없이 3800억 원을 대출했다. 당시 법무부는 엘시티에 대해 민간 건물로서는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게 ‘부동산 투자이민 구역’으로 지정해 줬다. 영주권을 미끼로 중국인 등 외국 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것이었다. 한 가지도 어려운 숱한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로비 귀재’로 불리던 엘시티 사업의 실질적 대표인 이영복(71) 회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던 사업 과정은 결국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17년 3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배덕광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등 12명을 구속기소하고, 나머지 12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비리 종합선물세트’라는 오명을 쓴 엘시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당시 시중에 나돌던 정권 수뇌부와의 연루설 등 다른 많은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했다.


■끊이지 않는 특혜 분양 의혹, 또 도마에

지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업 과정의 비리가 검찰 수사로 일단락되면서 엘시티는 잠시 세간의 관심권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런데 2017년 부산참여연대 등이 실제 소유주인 이영복 씨가 엘시티 분양권을 로비 수단으로 썼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특혜 분양자로 지목된 43명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이 고발 사건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인지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고발장을 접수한 지 3년 만이자 공소시효를 불과 3일 앞둔 2020년 10월 27일에야 43명 중 2명(이영복 회장 아들과 하청업체 사장)을 주택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나머지 41명은 모두 ‘성명 불상’으로 무혐의 처리했다. 시민단체들은 검찰이 43명의 인적 사항을 모두 파악하고도 유력 인사의 정체를 감춰 주려 한다면서 검찰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고 비판했다.

유야무야됐던 특혜 분양 의혹은 4년 만에 다시 떠올랐다. 이번엔 시민단체가 아니라 진정인이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점이 달랐다. 지난번의 43명과 달리 3배가량 많은 130여 명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나돌았다. 리스트 작성 날짜도 일반청약 당첨자들의 정식 계약일보다 하루 앞날인 2015년 10월 27일로 돼 있어 세간의 의혹은 더 커졌다. 리스트 성격을 놓고 진정인 측의 ‘로비용’이라는 주장과 엘시티 측의 ‘영업관리용’이라는 반박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엘시티의 잇따른 특혜 분양 의혹에다 최근 LH 사태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공유자산인 해운대 바닷가를 가로막아 선 공룡 같은 모습도 마뜩잖은데, 언제까지 해운대를 특혜 또는 비리의 오명으로 먹칠할 것인지 울화통이 치밀기 때문이다.


■시장 선거도 출렁…결과 따라 거센 후폭풍

현재로선 130여 명의 명단과 예전 시민단체가 제시한 43명의 명단이 얼마나 겹치는지, 실제로 특혜 분양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일단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 자체만으로도 이미 부산시장 선거전의 큰 쟁점이 되고 있다. 박형준 후보 가족의 엘시티 분양 사실을 두고 여야 간에 특혜니, 정상 분양이니 하면서 선거 분위기만 혼탁해지고 있다. 여당은 확인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얘기를 선거전에 활용하고, 야당은 이런 여당을 비난하면서 진흙탕 공방을 벌인다. 엘시티 이슈에 묻혀 부산의 앞날을 좌우할 시정 현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예전부터 제기됐던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을 말끔히 처리하지 못한 업보가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엘시티를 떠올리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비리의 딱지’를 떼야 할 때다. 엘시티로 인해 부산시민이 더는 열패감과 자괴심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이는 선거와 무관한 일이다. 어차피 선거 이전엔 수사 결과가 나올 수는 없을 것이므로 경찰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할 필요가 있다.

부산경찰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넘겨받은 뒤 맡은 첫 시민 관심사인 만큼 이번 수사로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시민은 물론 경찰 자신을 위해서라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 지금 부산은 ‘엘시티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