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 출신 판소리꾼이 불어로 노래하는 ‘사랑가’ 들어보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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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 마포 씨와 이범희 씨가 27일 부산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에서 펼친 판소리 공연(왼쪽). 공연 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로르 마포 씨와 이범희 씨. 부산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 제공·오금아 기자

“얼씨구, 조오타, 잘한다.”

27일 오후 한국 소리 페스티벌 ‘판소리’ 공연이 열린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카메룬에서 태어난 프랑스 국적의 로르 마포 씨. 삼성전자 파리지사와 코카콜라에서 경영관리사로 일했던 그는 2017년 판소리 공부를 위해 한국에 왔다.


부산프랑스문화원서 로르 마포 공연
6년 전 파리서 운명처럼 판소리 매료

“2015년 파리에서 판소리 명창 민혜성 선생의 공연을 봤는데 ‘큰일 났다’ 생각했어요.” 처음 접한 판소리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이거 배우고 싶은데 회사는 어떻게 하지,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싶었죠.” 마포 씨는 열 살 때 파리에 있는 이모에게 입양됐다. 그의 어머니와 다른 가족은 카메룬에 산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찾아온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마포 씨는 우선 한국어부터 배웠다. “한자, 사투리, 옛날 단어가 많아 한국 학생들보다 두 배, 세 배는 열심히 해야 해요. 가사를 이해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이날 공연에서 고수를 맡은 이범희 씨는 “로르 누나는 가사 발음이 웬만한 한국인보다 정확하다. 목청이 쩌렁쩌렁하면서도 소리가 맑아 뒤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깨끗하게 잘 들린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용인대 국악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하는 소리꾼이다.

마포 씨는 2018년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개최된 한국-프랑스 정상회담 국빈 만찬에서 판소리를 공연했다. “민혜성 선생님 수업 중에 공연 요청 메시지를 받았는데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는 정신이 멍해져서 ‘어학원 시험 있는 날인데…’라는 엉뚱한 소리까지 했다며 웃었다. 이듬해 마포 씨는 고향 카메룬에서 공연을 했다. “진짜 긴장했어요.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했는데 공연이 끝난 뒤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하시더군요.”

27일 부산 공연에서 마포 씨는 ‘단가: 사철가’, ‘홍보가’ 중 화초장 대목,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 등 세 곡을 들려줬다. 놀부가 흥부한테 화초장을 빼앗는 부분에서는 능청스럽게 역할을 바꿔가며 소리를 했다. ‘사랑가’는 가사 일부를 불어로 바꿔서 불렀다. “불어로 공연하면 프랑스 관객 반응이 더 좋아요. 내용을 이해하면 판소리 공연이 더 재미있어질 거라 생각해요.”

이날 공연한 마포 씨와 이희범 씨 모두 민혜성 선생의 제자이다. 민 선생과 제자들은 해외 판소리 공연에서 자막을 넣는 것에서 시작해 아예 외국어로 판소리를 해보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마포 씨가 부른 사랑가도 이 작업의 결과물이다. 마포 씨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입학했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해서 해외에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마포 씨에게 판소리는 치유의 음악이다. “파리에서 매년 한 번씩 아팠는데, 판소리를 하고 나서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졌어요. 치유와 교훈이 있는 판소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어요. 제가 판소리를 가르친 제자들과 어딘가에서 같이 공연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 공연을 통해 누군가에게 제가 판소리를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준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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