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의 매스토피아] 문명 속의 수학
김향숙 인제대학교 AI융합대학 교수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고 발전시키기 시작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수학은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 문명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속해서 제시했고 대부분의 경우에 수학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왔다. 수학은 문명의 발전을 위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인류 문명에 늘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이론을 촉진해 오늘에 이르렀다. 문명과 수학의 상호 작용 때문에 우리는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고, 항해술을 발전시켜 동양과 서양이 교류할 수 있었다. 그리스와 아라비아 그리고 인도에서 발견된 삼각법 덕분에 뛰어난 뱃사람들은 여섯 개 대륙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다.
어떤 수학적 발견은 수천 년이 된 것도 있고 아주 최근에 완성된 것도 있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고 매일 사용하는 라디오, TV, 전화기, GPS, 컴퓨터, 의료용 스캔 장비, 자동차, 대형 여객기 등은 수학 덕분이며, 머지않아 우리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과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일들을 수학 혼자 한 것이 아니지만 핵심적인 부분을 수학이 담당한 것은 사실이다. 문명이라는 구슬을 수학이라는 실에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가 만들어졌고, 아직도 계속 더 아름답게 만들어지고 있으며, 미래에는 얼마나 더 아름다운 모습의 목걸이가 완성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지 궁금하다.
인류 수학 통해 문제 해결 답 찾아
새로운 문명 변화 속도 예측 불가
급변 환경 늦지 않게 잘 대처해야
인류 문명과 수학은 서로 손을 맞잡고 공존해 왔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탄생한 수학은 생존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었다. 그리스 수학은 철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중국 수학이 발달하게 된 원동력은 천체의 운행을 통해 한 해의 주기를 연구하는 역법의 개혁이며, 인도 수학의 원천은 종교에 있다. 한편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의 수학은 천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르네상스는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 시기의 예술은 기하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17세기에 이르러 미적분이 탄생함으로써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에서 생겨난 일련의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한편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수학은 역학, 군사, 공학 기술과 연결되었다. 19세기 전반에는 수학과 시가 거의 동시에 고전시대를 지나 현대로 들어섰다. 20세기에 들어선 후 수학과 인문학은 다시금 추상화라는 특성을 공유했다. 예술 영역에서는 추상주의와 액션 페인팅이 출현했다. 수학의 추상화는 수학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은 영역에서 응용이 일어나도록 촉진했다. 응용 분야는 이론물리학, 생물학, 컴퓨터공학, 카오스 이론, 인공지능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우리들 대다수는 수학이 항상 옆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수학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현대 기술 문명이 낳은 기적들을 수학이 장막 뒤에 숨어서 실현시키고 있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제는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 인문학자, 경제학자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발전된 수학을 자신의 분야에 적극 활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수학 이론으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문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학은 역사에서 소홀하게 여겨졌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소중한 역할을 해 왔으며, 수학이 인류 문화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은 명백하다. 역사상 인류가 발명해 낸 많은 것이 단명했지만 이와 달리 수학은 영원하여, 어떤 수학적 내용이든지 일단 발견되고 나면 그 자체가 생명력을 획득하며, 누구라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훌륭한 수학적 개념은 좀처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요즈음 세상은 수학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고대로부터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논리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대부분 수학을 연구했다. 논리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필요했던 수학이 이제는 직업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수학이 다가올 현대 문명 속에서 거대한 폭풍을 일으킬 때를 기다리지 말고 국가와 사회는 잘 대처해야 할 것이다.
수학에는 국경이 없고 언어적 장벽도 없으니, 수학은 인류 문명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어쩌면 외계 문명에서도 중요한 구성 요소일 것이다. 지구인과 외계인은 수학이라는 형식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실제로 외계 문명과 만나게 된다면 원활하게 소통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과 장애가 있을 것이지만, 수학이 인류와 지구를 넘어 무한의 공간으로 한없이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때의 매스토피아를 상상해 보니 기쁨으로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