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찐독자의 언론 청문회
김희돈 편집부장

“친구야, 니가 <부산일보> 편집부장이라며~.”
얼마 전 가진 술자리 얘기다. 가끔 만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 게 시작이었다. 직장 동료를 제외하곤 가급적 약속을 자제하고 있던 차였지만 기꺼이 응했다. 마침 회사를 쉬는 날이기도 했고, ‘그동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느라 술 약속을 잘 참았지’라는 스스로의 노력을 보상해 주고 싶은 욕구도 작용한 선택이었다. 친구와 술 약속하면서 이런 궁리까지 해야 하다니 참 얄궂은 시절이긴 하다.
친구 퇴근 시간에 맞춰 만난 우리는 또 다른 친구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직원들이 퇴근한 사무실 한쪽 방엔 술과 안주가 차려진 테이블이 있었다. 친구는 코로나19 감염 걱정 없이 편하게 한잔하자는 의미로 불렀다고 했다.
가벼운 술 약속이라고 생각한 자리
술과 고기 대접하며 선거 보도 비판
알고 보니 벼르고 벼른 1인 청문회
억울하다 항변하고픈 심정 크지만
공감되고 수긍되는 지적 적지 않아
찐독자의 진정한 비판 새겨들을 터
이 친구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지난해 말 퇴근 후 들른 고깃집에서 일행에 섞여 1~2시간 술잔을 주고받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무실 술상에까지 초대받을 사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업시간 규제에 쫓겨 가게를 나설 때는 다음부턴 편하게 말을 놓자는 다소 의례적인 인사도 나눴지만 사무실 초대는 정말 뜻밖이었다.
“니가 <부산일보> 편집부장이라니까 하는 얘긴데~.” 뜻밖의 초대 이유는 지글지글 고기가 익고 술이 서너 순배 돈 후에야 명확히 알게 됐다. 잘 익은 고기를 손님들 접시에 골고루 놓아주던 친구가 미리 준비해 둔 <부산일보>를 들어 올리며 선거 얘기를 꺼내면서부터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 옆 의자엔 며칠 치 <부산일보>가 놓여 있었고, 몇몇 기사엔 형광펜으로 동그라미까지 쳐져 있었다.
기사는 죄다 7일 당선자가 가려질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었다. 우선 거론된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둘러싼 부산대 입장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를 앞둔 시기에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게 확실해 보이는)야당의 정치공세로 불거진 사안을 <부산일보>가 며칠에 걸쳐 1면 톱을 비롯한 주요 자리에 연속 보도한 이유가 뭐냐는 항의성 질문이 이어졌다.
다음으론 오거돈 전 시장에 관한 건이었는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의례적으로 시행한(것으로 보이는) 부산시의 전임 시장 사진 부착을 마치 성추행으로 사퇴한 이를 ‘예우’한다고 확대해석해 비판한 이유가 뭐냐는 주장이었다. 오 전 시장에 대해선 하나 더 있었는데, 강제추행 혐의 첫 공판이 연기된 사실을 한쪽 목소리를 빌려 일방적으로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두 건 모두 이번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사건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게 요지였다.
마지막으로는 한 후보의 부동산 의혹에 관한 기사. 핵심은 진실을 제대로 파헤치지 않고 되레 의혹 당사자의 입장만 대변해 준 보도에 그쳤다는 비판이었다.
그날 술자리는 결국 <부산일보> 선거 보도가 편파적이라는 지적과 항의를 하기 위해 마련된 청문회였던 셈이다. 오해에서 비롯돼 다소 무리하다 싶은, 그래서 억울하다고 항변할만 한 내용도 꽤 있었지만 친구 찬스를 활용한 청문회가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침 개인적으로도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았던 사안, 말하자면 부동산 의혹 같은 사안에 대해 <부산일보>의 펜이 기대만큼 날카롭지 못했다는 자성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의혹 당사자와 논란 대상이 모두 우리 지역에 있는데도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소할 사실 확인이나 검증 보도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에서다.
이번 선거 보도를 둘러싸고 미디어전문지나 언론시민단체 역시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산일보>도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불리는 단순 전달 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마식 판세 전달에 치중한 보도, 소수 후보의 목소리를 경시한 거대정당 쏠림 보도 등 지속해서 비판받는 선거 보도 관행을 되풀이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필자를 비롯한 <부산일보> 기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과소평가되거나 편향된 시각에서 비롯된 비판 또한 적지 않다고 항변하고도 싶다. 그럼에도 요샛말로 찐독자인 친구의 우아한 충고는 충분히 고마운 배려임이 틀림없다.
정상에 올라 맘껏 야호를 외쳤는데 메아리가 없다면 얼마나 공허할까. 열심히 기사를 썼는데 ‘좋아요’ 이모티콘이나 댓글 하나 없다면 또 얼마나 힘이 빠지는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언론을 향한 비판과 지적은 효과 좋은 영양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비판과 지적을 아끼지 않는 이라면 언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분명하다. 고기까지 구워 주면서 뭐라 할 정도라면 두말할 것도 없을 터이다. 소중한 관심이고 사랑이다.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