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죽어 가는 광복로
시들시들 ‘상권 1번지’ 보릿고개 탈출구 있나
요즘 2030세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년 이상에게 추억이 깃든 남포동·광복동으로 이어지는 원도심의 의미는 각별하다. 광복동(光復洞)이라는 이름은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번창한 지역에 해방의 의미를 기리고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광복로는 광복동을 따라 옛 시청 앞(롯데백화점 광복점)에서 부평 교차로까지 1㎞ 남짓한 구간이다. 광복로는 사전에도 관광객 등 유동인구가 매우 많은 곳으로 소개되는 부산의 대표적 번화가다. 그런데 광복로의 불이 꺼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미 진행되던 중에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어떻게 하면 광복로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 직격탄
대로변 텅 빈 건물 20곳
계약 남아 문만 연 가게
권리금 없는 곳 수두룩
대기업 점포도 자발 철수
소상공인 위한다는 법
‘상가 임대차 10년 보장’
되레 ‘둥지 내몰림’ 가속
청년 지원책도 도움 안 돼
기약 없는 빈 점포 대신
건물주 착한 임대료 필요
지자체 현장 맞춤 정책도
■코로나, 젠트리피케이션 가속화
비 내리던 12일 오후. 오랜만에 나온 광복로에 빈 점포가 너무 많아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대체 얼마나 비었는지 직접 숫자를 세어 보기로 했다. 광복로 대로변 양쪽으로 목 좋은 1층에 빈 점포가 12곳이었다. 1층을 포함한 건물 전체가 빈 경우는 신축을 포함해 20곳이나 되었다. 뒷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권리금 無’라고 써 붙인 빈 점포가 흔하게 눈에 띄었다. 피 같은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간 자영업자의 쓰라린 눈물이 묻어 있었다. 광복로는 패션의 거리라고 했다. 대기업도 광고 효과를 노린 안테나숍으로 광복로에 매장을 개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나가는 화장품 브랜드 ‘미샤’나 ‘카페 드롭탑’이 쓰던 건물도 통째로 비어 있었다. 큰 기업까지 자발적으로 철수에 나선 지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광복로에서 옷가게를 하는 한 업주는 “주 고객층이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지금은 출·입국 자체가 힘들어 매출이 90% 이상 줄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조금 더 깊숙이 부평깡통시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임대료 차이가 나는 덕분인지 몰라도 광복로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였다. 하지만 여기도 속은 곪고 있었다. 부평깡통시장에는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빈 점포는 하나도 없었고, 권리금은 다 있었다. 지금은 권리금 없는 빈 점포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이곳 시장에는 상가를 보증금 없이 달세 형식 등으로 주는 ‘깔세’라는 방식이 있다. 깔세는 월세보다 더 많아야 당연한데 적게 받아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고 했다. 빈 점포가 늘어나니 밤이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단다.
광복로가 죽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꽤 되었다. 광복로 문화포럼 김태곤 사무국장은 광복로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2012년부터 부각되었다고 기억했다. 2015년 말 기사는 ‘광복로는 빈 매장이 늘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 2단계의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조만간 상권이 쇠퇴하는 3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원도심 상권 쇠퇴에 기름을 부은 것이었다.
■탁상행정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13일 광복로 문화포럼 사무실 등에서 만난 김 사무국장과 부동산 업계 관계자, 상인들로부터 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광복로에서 지금 영업을 하는 점포들도 계약 기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조만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부산을 대표하는 이 거리는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착한 임대인 제도’가 생각났다. 빈 점포를 방치하느니 임대료를 깎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광복로 건물주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차라리 비워 두지 임대료를 깎아 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꼭 그렇지는 않았다. 광복로의 임대료는 건물을 통으로 쓰면 월 3000만~5000만 원 수준. 광복로에도 임대료를 30%가량 삭감해 주는 건물주가 있지만 그 비율이 10%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깎아 준 사실은 밖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 가격이 떨어진다’ 혹은 ‘임차인이 너도나도 깎아 달라고 한다’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아쉬웠다.
자영업자를 위해서 만든 정부의 정책이 취지와는 달리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2018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도 그랬다. 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나, 임차인은 10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임대료 인상은 일 년에 5%로 한정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 건물인데도 10년간 소유권 행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물주는 첫 임대료를 높게 잡으려고 한다. 임차인을 까다롭게 고르고, 내려서 계약을 안 하려는 이유다. 계약갱신청구권 10년, 임차인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을까.
정부나 지자체의 청년 창업 지원 정책도 상권에 도움이 안 되는 탁상행정이 많다는 비판이다. 청년 상인들이 모두 떠나 다시 실패로 끝난 국제시장 청년몰을 배달음식 전문점으로 바꾼다는 부산 중구의 최근 발표도 그랬다. 상인들은 “청년몰이 있던 국제시장 2층은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 들어가도 못 견디는 곳이다. 새로 시작하는 청년들이 무슨 노하우가 있어서 낙후된 곳의 상권을 살리겠는가”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장사의 기본 없이 형식적인 청년 창업은 시간이 되면 자연도태되기 마련이다. 중구의회 김시형 구의원은 “시장 분석조차 제대로 안 되었는지 중구에 유사한 업종이 널려 있다. 창업을 지원하는 지자체나 기관에는 성과이고, 점포 소유자에게는 이익이 돌아갈지 몰라도 청년 창업자들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만들기 쉽다”라고 말했다.
■코로나만 끝나면 활성화가 될까
광복로는 외국인 관광객 매출이 70%를 차지하는 곳이다. 코로나가 물러나고 외국인 관광객만 돌아오면 가장 빨리 활성화될 곳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다. 하지만 광복로가 다시 예전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각종 부정적인 지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부산인구는 340만 명대가 무너졌다. 2020년 부산인구는 2011년 대비해 거의 16만 명이나 감소했다. 최근 5년간 부산지역 자영업자 감소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부산지역 자영업자는 2013년 37만 3000명에서 2018년 30만 9000명으로 6만 4000명이 줄었다. 부산의 상권은 동부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 저렴하면서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인터넷 쇼핑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의 저자 모종린 교수는 “지속가능한 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골목길의 상인과 건물주 모두 장인이 되어야 한다”며 ‘장인 공동체’개념을 제안했다. 사실 상인이든 건물주든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려면 먹거리를 포함한 문화가 있어야 한다. 광복로의 조창래 공인중개사는 “상권은 선수들이 살아나게 만든다. 만약 내 건물이 비었다면 ‘장사 선수’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옷을 잘 파는 선수들을 모아 어우러지게 만들면 활기가 확산이 된다”라고 말했다. 광복로처럼 임대료가 비싼 곳에도 이런 업종과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광복로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광복로 활성화의 상징인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와 광복로 시범가로 조성사업에는 상인들의 희생이 있었다. 상인들은 자신의 손해를 조금씩 감수하며 지금의 광복로를 만들어냈다. 광복로의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너무 높은 임대료를 고민해야 한다. 상권 쇠퇴기를 지나고 젠트리피케이션 4단계에 접어들면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낮추기 시작한다고 전망한다. 그때는 너무 늦었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