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아버지의 사라지는 기억
영화평론가
작년 여름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으셨다. 병과 은퇴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던 아버지는 퇴원 후에도 자신의 변화한 몸에 낯설어했다. 행동은 느려지고, 말은 어눌해지고, 몸이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자 감정적으로 특히 힘들어하셨다. 불면과 우울의 밤이 깊어지고 수시로 아픔을 호소하는 아버지로 인해 가족들의 삶도 변화했다. 산 같던 아버지가 몸도 마음도 약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파더’를 보고 여러 감정들이 몰려왔다. 안소니 홉킨스의 실감 나는 연기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고, 병의 공포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매번 괜찮아질 거라고 아버지에게 혹은 나에게 되새김질 했던 말들을 영화에서 발견했을 때, 아픈 아버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억 잃어가는 80대 노인 ‘안소니’
딸 ‘앤’과 마주하며 혼란스런 심리
젤러 감독 연극 ‘더 파더’ 영화화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 연기 일품
진실보다 혼돈 함께 느끼도록 연출
나이듦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 포착
영화는 80대 노인 ‘안소니’의 시선을 따라가는 심리 드라마다. 감독 플로리앙 젤러는 이 작품을 2012년 연극으로 첫 선을 보였다가, 본인이 각색해 첫 영화 연출까지 맡았다. 안소니는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앤’의 얼굴이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이 아니고, 이혼한 앤이 남편과 잘 지내고 있다는 이해 못할 말을 듣는다. 또 어느 날은 딸이 파리로 이사를 가겠다고 말하고, 다음 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안소니를 되려 걱정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관객들은 무엇이 진짜고 허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영화의 내용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앞 장면과 다음 장면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안소니의 상태는 이해가 가지 않고 혼란에 빠진다. 안소니 또한 자신의 기억이 조금씩 어긋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무력함과 불안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 안소니가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집’이다. 영화는 안소니가 거처하는 집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모든 사건이 집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안소니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기억과는 다르게 집의 구조가 변해가는 것을 확인하다. 이제 집도 그에게 안식을 주지 않는다. 특히 영화는 안소니가 방문을 열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거듭 보여주는데 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잘 포착된다.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안소니. 그는 마치 집 속에 갇힌 것만 같다. 아니 이제 홀로 자신의 방을 나갈 수 없음을 직감했는지 모른다. 어제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안소니는 언젠가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게 될까 봐 아이처럼 운다. 기억이 섞이고 어느 기억은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게 되는 일상, 안소니에게 그것은 공포다.
감독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가려내는 것보다, 치매에 걸린 안소니의 머릿속을 따라가며 그의 혼돈을 관객이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독특한 연출을 선보인다. 물론 이는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독은 처음부터 안소니 홉킨스가 안소니를 연기하기를 원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감독의 생각처럼 안소니 홉킨스는 최고의 연기를 펼쳤고, ‘더 파더’를 그의 영화로 만들었다.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화는 내 아버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다. 그래서 안소니의 마지막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내 잎들을 모두 잃고 있는 거 같아…” 무성한 잎을 가진 나무도 언젠가 그 잎이 다 떨어지고 만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가 아니던가. 인간의 무력함을 쓸쓸하게 포착하는 ‘더 파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