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시아인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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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받으러 미국 가려는데 아들이 걱정이 많아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경호원을 붙이자는 말까지 했답니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가 된 윤여정 씨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윤 씨 아들의 걱정은 근래 미국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아시아인 혐오 범죄 때문이다. 한 백인이 한국계 등 아시아인 6명을 살해한 애틀랜타 총기 사건에서 보듯, 미국 내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미국만이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도 최근 인종 차별의 표적이 돼 곤욕을 치렀다. 백인 중심의 서양 국가에서 아시아인 혐오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백인의 흑인 차별이 멸시에 따른 것인 데 비해 아시아인 혐오는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했던 황화론(黃禍論)이 그 하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열강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에 황인종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그래서 황인종을 억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멀리는 5세기 아틸라의 훈(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흉노)을 비롯해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인은 유럽 백인에게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훈과 몽골의 침입을 두고 ‘신의 형벌’이라 표현했을까.

근대 이후 세계를 주무르는 힘을 갖게 되면서 아시아인을 대놓고 침팬지에 비유하고 ‘더러운 노란 무리들’(Filthy Yellow Hordes)이라 욕하는 서양 백인들이지만, 그들의 유전자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각인돼 있는 것이다.

그런 백인들이 차라리 흑인에게는 허용해도 아시아인에게는 주도권을 넘겨 주기 싫은 분야가 골프였다.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골프는 수십 년 전만 해도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그 아성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미국 남자 프로골프 대회 ‘마스터스’가 좋은 예다. 마스터스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로 불리지만 오랫동안 아시아인 등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폐쇄적인 운영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의 임성재가 준우승하더니, 지난 12일 끝난 제85회 마스터스에선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가 정상에 올랐다. 둘 다 아시아인으로선 최초의 성적으로, 두려움을 혐오로 포장해 표출하는 비열한 백인들에게 아시아인의 저력을 확인해 준 것이다. ‘골리앗에 대적하는 다윗’에 비유되는 두 선수의 ‘파이팅’에 박수를 보낸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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