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스마트 선박 등장과 조선·해운산업 미래
안광헌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본부 사업대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우리나라 조선·해운산업은 업황 부진과 지속적인 경영 악화에 시달렸다. 중소 조선사들이 잇따라 도산했고, 2016년부터 대형 조선사들마저 금융 압박을 견디지 못해 인수합병(M&A)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굴지의 선사 한진해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조선·해운산업은 몇 차례 큰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발휘했다. 약 10년 단위로 반복돼 온 위기 상황을 특유의 열정과 돌파력으로 극복하며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한 단계씩 더 성장해 업계 위상을 되찾고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해운산업은 조선-해운-항만-기자재-금융으로 연결된 거대한 블록체인과 밸류체인을 구성해 연간 약 90조 원의 부가가치를 유발하며, 70여만 명의 고용을 창출한다. 조선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수출 및 고용의 7%를, 해운산업은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97%를 각각 점유하고 있다.
국내 조선·해운업 경영난에 시달려
위기 극복하면서 한국 경제 이바지
해양 온실가스 규제 강화 대비 필요
친환경 선박 기술로 세계 선점해야
최근 세계 조선·해운시장의 최고 화두는 지난달 23일 이집트 수에즈운하에서 발생한 초대형 선박의 좌초와 운하 파손사고로 인한 후유증이다. 사고에 따른 운항 차질 비용, 운송료 손실, 운하 복구비 등 약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의 직·간접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사고로 연쇄적인 운항 차질이 대규모로 빚어진 데다 컨테이너 운임의 상승 추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약 9%의 선박에 대한 운항 항로 조정이 이뤄졌다. 지난 6일 유럽-북미 항로 운임은 FEU(4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당 2851달러로 사고 당시 2187달러에 비해 30.4%나 올랐다. 두 번째 화두는 컨테이너 박스 부족 현상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전 세계 바다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운항 도중에 폭풍우나 큰 파도를 만나 기우뚱거리면서 싣고 있던 컨테이너를 대량으로 유실한 사고가 수 차례 일어났다.
세 번째 이슈는 해양 온실가스 감축이다. IMO(국제해사기구)는 선박 등에서 배출하는 해양 온실가스의 양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2025년까지 공해상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30% 감축하도록 조치했다. 2050년까지는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를 각각 70%, 50% 이상 감축할 것을 권고했다. 또 선박의 추진출력 제한, 에너지 저감장치 설치, 대체 연료 사용 등 엄격한 규제를 예고했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조선·해운산업이 미래 경쟁력을 갖춰 살아 남기 위해서는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플랫폼을 연결한 환경친화적인 최첨단 선박 개발을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친환경 스마트 선박 말이다. 또한 최적화된 첨단 기술로 집약된 디지털 전환 기술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SM(선박관리)을 고도화해 비즈니스 모델과 연결해야 한다. 이를 산업계와 정부가 당면 과제로 삼아 협력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현재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책, 친환경 규제, 탄소 중립 등 숙제 속에서 미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친환경 스마트 선박과 운항 효율을 극대화한 디지털 플랫폼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그리고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자율운항 선박의 핵심기술 개발과 IMO의 해양환경 규제 강화에 대비해 나가고 있다. 세계 조선·해운산업은 디지털화와 탈탄소화라는 두 축으로 급속히 이동하는 추세다. 이런 움직임은 올해를 기점으로 가속화할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계 조선·해운산업은 친환경 선박 기술 확보, 스마트 선박과 자율운항 선박 개발, 스마트 쉽야드(Smart Shipyard) 구축으로 향배가 갈릴 것이다. 우리는 이를 미래 해양산업 발전의 대명제로 인식하고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자율운항 선박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융합된 선박으로, 기존 선원의 역할을 인공지능 시스템이 대체해 인적 과실을 줄여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게다가 효율적인 자원 운용과 항만물류 프로세스의 최적화를 통해 새로운 선박관리 사업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사운송 부문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 2025년 시장 규모가 15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운항 선박은 한국 해양산업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기술이다. 정부와 해운사, 조선 및 기자재 업체, 연구소와 시험기관, 한국선급이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총력을 기울여야 기술 선점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해운산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큰 국가 전략산업이자 미래 핵심기술 선도산업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가적 역량 결집이 필요하다. 조선·해운이 다양한 분야의 해양산업과 선순환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업종 간 기술협력이 활발해지면 한국은 세계 최강의 해양국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