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형준 부산시장의 ‘남다르게 정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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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스포츠부장

A는 수년 전 ‘신의 직장’을 그만뒀다. ‘점점 소모품화 되는 것 같다’는 이유였다. 현재 다른 곳에서 근무 중인 A는 또 사직을 고민 중이다. 같은 이유다. 그는 직장이란 생계를 위해 싫어도 다녀야하는 곳이지만 도무지 보람을 찾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인 B는 자기 일에 열정적이다. 그는 난관을 뚫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때마다 자신의 내면도 함께 성장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B는 “100세 시대를 살려면 노후 퇴직 뒤 창업은 필수 아닐까요. 미래 제 회사를 위해 지금 직장에서 월급 받으며 경영 공부와 자기계발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레 즐거워요”라고 말했다.

진정성 담은 ‘새롭게 정의하기’
큰 희망 만들고 사회적 진화 이뤄
변곡점의 시대, 부산·동남권 앞날
신임 시장 ‘정의하기’ 능력에 달려


A, B의 가치관은 확연하게 다르다. 누가 더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직장 내부 성과, 향후 인생 흐름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그 이유는 ‘직장, 직업, 일의 의미에 대한 각자의 정의’부터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안을 정의할 때 철학과 통찰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다. 그 사안의 본질을 충분히 탐구한 사람과 자기 편의대로 해석한 사람의 정의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본능에 충실한 좁은 시각으로 내린 정의를 시금석으로 삼거나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이들의 행로에서 창의성이나 발전성을 찾기 어렵다. 삶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큰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방법을 공부하는 인문학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세상일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타 민족에 대한 잘못된 생각 등 ‘그릇된 정의하기’는 세계대전 등 엄청난 비극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류는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와 인종, 조직, 개인 등이 사익과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편협한 정의를 내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억지 명분을 부여하는 일들이 드물지 않다.

반면 진정성을 담은 ‘새롭게 정의하기’는 큰 힘을 발휘해 큰 희망을 만들고 사회적 진화를 이뤄낸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런 역동적인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 중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지난 해 4월 출범한 제3기 부산일보 독자위원회와 관련된 것이다. 본보는 옴부즈맨 제도로 각계 시민을 독자위원으로 위촉하고 있다.

제3기 독자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송월(주) 박병대 회장은 출범 직후 위원회가 앞으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독자위원회 정체성에 대한 정의내리기’를 첫 토의 주제로 제안했다. 이례적이었다. 독자위원회는 통상 ‘보도된 과거 기사 비평’을 주된 기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날, 25명의 제3기 독자위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수동형에서 능동형으로 재규정했다. ‘과거 기사 비평’도 중요하지만 동남권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을 부산일보 지면에 최대한 많이 담도록 적극 조언하는 ‘어젠다 리딩’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변화의 동력은 부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는 각계 독자위원의 절절한 공감대였을 것이다. 이어 독자위원들은 동남권과 국가 발전을 위한 가장 절박한 어젠다로 가덕신공항,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 동남권 메가시티화를 꼽았다. 독자위원회는 본보에도 어젠다 실현을 위한 한 차원 높은 선택과 집중을 촉구했다.

독자위원회의 ‘정체성 새롭게 정의하기’ 효과는 놀라웠다. 부산일보는 독자위원회의 의견을 100% 수용, 어젠다와 관련한 기사와 칼럼 비중을 대폭 늘리는 등 한층 치열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수도권 정치계·언론계와 본보가 격돌하는 ‘전쟁 상황’에서도 선택과 집중은 계속됐다. 독자위원회도 회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예비 회의 개최 등 전에 없던 능동적 방안을 계속 시도했다. 드디어 30여 년 숙원인 가덕신공항 건립을 확정하는 특별법이 올 2월 26일 국회를 통과했다. 메가시티 등 나머지 어젠다에 대한 공감대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특별법이 통과하던 날, 제3기 독자위원들의 열정적인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남다르게 정의하기’가 없었다면 어쩌면 신공항 등 부산의 현안들은 여전히 지지부진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서민, 기업인 가릴 것 없이 여전히 많이 힘들다. 제2의 도시라지만 학대 수준의 방치에 부산은 끝없이 추락했고, 대한민국은 수도권 공화국으로 전락해 스스로 영토를 축소했다. 급변하는 변곡점의 시대, 박형준 신임 부산시장은 자신의 역할과 부산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렸을까. 무척 중요한 시기다. 박형준 시장의 ‘남다르게 정의하기’ 능력에 부산과 동남권,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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