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는 잘못된 길” 은성수 발언에 폭발한 2030
부산 강서구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 신 모(29) 씨. 그는 올해 초 이른바 ‘코인판’에 뛰어들었다. 가상화폐에 투자한 150만 원이 순식간에 260만 원이 되는 ‘마법’을 겪었다. 그 전에 신 씨는 신고가를 경신하는 부동산과 주식 뉴스를 거의 매일 접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정반대였다. 회사에서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내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졌다. 코인이야말로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탈출구라고 확신한다. 신 씨는 “경제난과 취업난 속 대다수 청년은 현 위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뚜렷한 방법이 없어 코인판에 뛰어든다”고 토로했다.
금융위원장 사퇴 청원 13만 명
“누가 이 길 만들었나” 부글부글
정부가 계층 탈출 막차까지 규제
대학생 “제도권으로 들여와야 ”
올 신규 가입자 60%가 20~30대
■2030 “사다리 걷어차는 거냐”
지난 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화폐는)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발언하는 등 정부는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와 과세를 예고한다. 실제로 이달부터 6월까지 석 달간 관계기관 합동으로 가상자산 불법행위 등을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또 내년부터 가상화폐에 대해서도 연간 250만 원을 초과한 소득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 20%를 부과하는 과세 계획을 검토 중이다. 가상화폐 시장을 통한 탈세와 재산 은닉 등 범죄 행위를 막고 질서 유지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코인 광풍’의 중심에 선 2030세대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진다. 2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13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앞서 은 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하루에 20%씩 오르내리는 자산에 함부로 뛰어드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보지 않고,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한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왜 이런 위치에 내몰리게 되었느냐”며 “4050세대는 부동산이 상승하는 시대적 흐름을 타서 노동 소득을 투자해 쉽게 자산을 축적해 왔는데, 이제는 정부가 그것이 투기라며 2030세대에겐 기회조차 오지 못하게 각종 규제를 쏟아낸다”고 주장했다.
■극심한 양극화, 광풍 부추겨
2030 청년층은 취업난과 경제난, 이중고 속에서 가상화폐를 계층 탈출을 위한 ‘막차’로 본다. 부산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임 모(25) 씨는 저축보다 가상화폐가 더 낫다고 단언한다. 그는 “낮은 금리로 저축할 바엔 잠자고 공부할 시간에 가상화폐로 돈을 불리는 게 장기적으로도 옳은 것 같다”며 “가상화폐 시장 청년 투자자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는 가상자산을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화폐가치를 인정하고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올해 상반기 가상화폐 시장 가입자를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2030세대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실이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사이트(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신규 가입자 249만 5289명 중 만 20세부터 만 39세까지는 158만 4814명이었다. 전체의 63.5%에 달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상화폐 가상자산과 이용자 보호를 위한 시스템을 도입해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대 정남기 경제학과 교수도 "2030세대 가상화폐 열풍은 최근 집값 상승으로 인한 절망감과 '이 기회를 놓치면 낙오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따른 것"이라며 "정부가 가상화폐 열풍으로 인한 돈세탁 등 위법 행위와 사고 위험을 고려해 규제 카드를 꺼내드는 상황인데, 안정된 가상화폐 통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진석·손혜림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