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외교행낭과 보따리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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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정부와 재외공관 사이에서 극비 공문서와 공용물품을 주고받기 위해 사용되는 외교행낭은 1961년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 27조에 따라 국제법상 외교관의 면책특권으로 인정됐다. 외교행낭은 운반 도중 어떤 경우에도 재외공관 주재국 정부나 제3국이 열어 볼 수 없고 수색이나 압수에서도 제외된다. 통관에서도 면세 등 특혜를 받는다.

하지만, 외교행낭을 이용해 본국 독재자에게 진상품이나 마약, 현금을 보내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1984년에는 나이지리아 정부가 영국으로 망명한 알하지 디코 전 운수장관을 납치한 뒤 마취시켜 외교행낭으로 압송하려다 런던 공항에서 발각되는 기상천외한 일도 벌어졌다. 당시 겉면에 외교행낭 표시가 없었던 것이 세관 검색의 빌미가 됐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한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도 외교행낭에 실려 말레이시아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문화재 수집광으로 1948~1963년 두 차례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가야~조선 시대에 이르는 보물급 문화재 1000여 점을 외교행낭을 이용해 무단반출하기도 했다. 한국 외교부도 해외공관에서 가짜 영수증을 끊어 만든 비자금, 국제법상 금지 물품인 보드카 5병, 오징어 80마리, 6000원에 당첨된 로또 복권 1장 등을 외교행낭으로 보내다 감사원에 적발된 흑역사를 갖고 있다. 물론 극소수에 불과하고 사소한 듯 보이지만, 국가 예산과 국제법을 사적으로 이용한 특권 의식의 표출이자 범죄행위다.

박준영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가 2015~2018년 영국대사관에서 공사참사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후보 부인이 찻잔, 접시 세트, 샹들리에 등을 대량 구매한 뒤 외교행낭으로 반입한 사실이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졌다. 박 후보 부인은 세금 신고조차 하지 않은 물품을 판매하면서 “뭘 산 거야, 얼마나 산 거야, 내가 미쳤어, 씻기느라 영혼 가출”이라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부산-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훼리호 ‘원조 나까마(보따리장수)’들이 TV를 보면서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보따리’ 수법과 대담함에 혀를 끌끌 차지 않을까? 박 후보의 ‘외교행낭 보따리장수’ 일탈이 사소한 비리도 관행이라고 감싸면 더 큰 비리와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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