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이 된 ‘골목서 맘껏 뛰놀던 아이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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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천국-잃어버린 골목 놀이… / 셜리 베이커 외 지음

오늘날 ‘밖에서 놀기’는 더 이상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심 속에서 아이들이 맘대로 뛰놀 수 있는 골목길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부산은 산을 끼고 있어 다른 도시에 비해 골목길이 많다고 하지만, 이 또한 도시 재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여기에 아이들도 게임기, 스마트 폰 등으로 집 밖에서 노는 것보다는 집 안이나 건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해가 뉘엿뉘엿 지거나 밥때가 돼 어머니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바깥에서 놀며 지내던 여름의 긴 오후를 우린 기분 좋게 기억한다. 돌이켜 보면 20~30년 전만해도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그런 모습은 더 이상 흔하지 않다. 아니, 아련한 추억 속에서나 찾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 됐다.

1960~70년대 영국 도시 골목길 배경
90여 장 흑백·컬러 사진으로 책 구성
공 차고, 춤추고, 싸우고, 장난치고…
지금의 골목도 호기심·모험으로 ‘가득’

<바깥은 천국-잃어버린 골목 놀이의 기술>은 과거 골목길에서 뛰놀던 추억을 소환하는 책(사진집)이다. 흑백과 컬러로 이루어진 책 속 90여 장의 사진들은 1930년대, 1950년대 모습도 있지만, 대부분 1960~70년대 영국 도시의 골목길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담았다. 비록 사진 속에 등장하는 거리나 골목길은 조금 낯설지만, 사진 속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우리가 어릴 적 놀았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 사진집으로 들어가 보자. 1970년대 영국의 아이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자전거 경주를 하거나 공을 차고 놀았다. 인형, 축구공, 줄넘기…. 이게 그들의 장난감이었다. 막대기, 물웅덩이, 커다란 배수관, 기어오르기엔 아찔해 보이는 담장…. 아이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놀잇거리를 찾아서 적응해 나갔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뛰고, 상상하고, 싸우고, 공 차고, 웃고, 장난친다. 거리에서 축구를 하거나, 칼싸움하거나, 춤을 같이 추거나, 가로등 기둥에 매달리거나, 하수구 구멍을 뒤지거나, 서로 싸우면서 때리거나 하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행동이 사진으로 찍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사진작가 로저 메인(1929~2014)은 1956~1961년 사이에 노스 켄징턴의 사우샘 스트리트 동네를 찍은 사진들로 영국 거리 사진에 하나의 기준을 마련했다. 사진을 유심히 보다 보면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 10명의 사진 특징도 감지된다. 메인은 칼과 방패, 화살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주로 담았다.

셜리 베이커(1932~2014)는 영국의 가장 주목할 만한, 그러나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에 거리 사진가로 활동한 사실상 유일한 여성 작가였다. 거리에서 크리켓이나 우리의 사방놀이와 비슷한 것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 하수구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정겹게 담아냈다.

폴 케이(1929~2012)는 1960년대 초반 사우스 런던의 밸럼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의 사진들은 아이들이 서로 가까이 지내며 다진 탄탄한 우정을 매력적으로 환기한다. 이를테면 인형을 안고 환하게 미소 짓거나 옹기종기 앉아서 바닥에 그림을 그리거나 나무 널빤지 위에 나란히 줄 서서 헌 집 창문 쪽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의 모습 등이다.

1950~60년대의 유년기 전통과 놀이를 연구한 로버트 오피와 이오나 오피는 1961년 에 ‘아이들 게임의 은밀한 세계’라는 제목으로 이런 주장을 펼쳤다. “누군가가 조직해 준 자유 시간을 갖는 아이들과 다르게 자기만의 방식을 갖고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은 끈기와 절제력을 키울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아이들은 더 많은 장비를 갖출수록, 자기 유희에 대한 전통적인 기술을 잃어버린다.” 이런 주장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2020년 12월 런던에서 사진전 ‘예전에 우리는(HOW WE WERE)’이 열렸다. 사진작가 셜리 베이커의 1960년대 거리 사진을 큐레이션 한 이 전시를 열며 영국 청소년문화 미술관은 특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1960년대 아이들 세계의 순수하고도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코로나 대유행에 살균처리로 대처하는 오늘날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과거와 현재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의 거리와 골목은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모험으로 가득 찬 곳이다. 갑자기 그곳에서 아이들이 맘껏 놀게 할 의무감이 샘솟는다.

누군가에겐 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놀다가 행복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는 것이 천국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느낌을, 잃어버린 바깥 놀이의 기술을 추억하게 해 준다. 사진은 책보다 강렬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셜리 베이커 외 지음/김두완 옮김/HB프레스/112쪽/1만 8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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