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민자도로 폭리 구조 개선할 TF 만들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진국 디지털미디어부장

많이 남길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폭리를 취하는지 몰랐다. <부산일보>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부산의 7개 민자 도로 운영사는 통행 요금과 지원금으로 3조 원이나 벌었다. 현재 수익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2050년까지 민자 도로 운영사가 챙겨 가는 추가 이윤은 적게 잡아도 2조 4000억 원에 달한다.

민자 도로 운영사의 폭리 구조는 산과 강 바다가 뒤섞인 부산의 독특한 지형과 자치단체의 협상력 부족, 지역 SOC사업에 인색한 정부가 만들어낸 재앙이다.

전국서 민자 도로 가장 많은 도시 부산
운영사 폭리 구조로 시민들 부담 가중

자기자본 최저 기준도 없이 실시 협약
MRG 조항까지…운영비 인상 자초

협약 개편·국비 지원 논리 개발 필요
시민대표 전문가 참여하는 TF 만들 때

부산은 인구 35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 치고는 지형이 특별하다.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이 흐르는 서쪽은 평야 지대이고 동쪽은 리아스식 해안이다. 강과 바다 사이 도심은 금정산~백양산~구덕산~승학산~몰운대로 이어지는 금정산맥과 달음산~장산~금련산~황령산~봉래산으로 이어지는 금련산맥이 가로지른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도심과 부심이 나뉘고 항만과 공항이 분리됐다. 도심으로 진입하려는 시민들은 고개를 넘거나 둘러가는 불편을 겪었고, 항만과 공항을 갖추었음에도 국제적인 물류 도시로 도약하는 데 애로가 많았다.

터널과 교량에 대한 수요가 클 수밖에 없는 지세다. 1981년 번영로를 시작으로 1984년 구덕터널, 1988년 제2만덕터널, 1993년 동서고가도로, 1996년 황령터널이 만들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백양터널(2000년), 수정터널(2002년), 광안대교(2003년), 을숙도대교(2010년), 거가대교(2011년), 부산항대교(2014년), 산성터널(2018년), 천마산터널(2019)이 차례로 개통됐다.

도로와 터널 교량은 필요하고 돈 나올 데는 없으니 부산시는 시민들의 주머니에 기대 공사를 벌였다. 전국 지자체 유료도로 32개 중 25%에 달하는 8개가 부산에 만들어진 이유다. 이중 2000년 이전 만들어진 5개는 유료 도로 운영 기한이 만료됐다. 나머지 8개는 한 번 이용에 900~1만 원을 내야한다.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선 유료 도로는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시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겼다. 부산지역 유료도로를 모두 통과하면 소형차 기준으로 1만 8600원, 대형차는 최대 4만 7100원을 내야 한다. 특히, 민자를 끌어들여 만든 7개 도로는 비싼 통행료와 지원금을 후불 건설비 형식으로 납부받고 있다. 교통 불편 해소를 빌미로 ‘착취 구조’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턱없는 폭리 구조가 만들어졌다.

민자 사업자가 이처럼 ‘무위험 고수익’을 올리는 데는 협상 과정에서 자기 자본 최저 기준도 정하지 못한 부산시의 협상력 부족이 큰 몫을 했다. 백양터널 운영사의 자기 자본 비율은 전체 사업비(893억 2500만 원)의 0.8%에 불과한 10억 원이다. 자기자본 비율이 낮으니 사업자는 연리 15%의 고금리로 천문학적인 건설비를 조달했다. 결과적으로 원리금 상환 등 운영비가 높아졌고 이는 고스란히 시민 부담으로 돌아왔다. 같은 사정으로 수정터널도 사업비 조달 금리가 8.5~20%에 달한다.

부산시의 협상력 부재는 최소운영수익보장(MRG) 같은 독소 조항을 실시협약에 넣은 데서도 드러난다. MRG 협약에 따라 발생한 손실액을 부산시가 예산으로 지원, 민자 도로 운영사는 ‘무위험 고수익’의 혜택을 누린다. 이런 불평등 실시협약 아래 백양터널 운영사는 지난해까지 자기자본의 188배에 달하는 1882억 원의 순익을 냈고, 수정터널 운영사도 자기자본금 대비 68배에 달하는 3818억 원의 순수익을 냈다.

부산 시민들이 민자 사업자의 ‘봉’으로 전락한 데는 정부의 인색한 국비 지원도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수도권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국비를 서슴없이 투입한다. 실제, 3기 신도시 수도권 GTX 신설 사업비는 무려 1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역 SOC에 대한 투자에는 너무 엄격해 지자체가 민자에 기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현존 8개 유로 도로 중 광안대교만 유일하게 국비 100%를 지원받은 것만 봐도 정부의 인색함을 알 수 있다.

부산에는 민자 도로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건설 중인 만덕~센텀 간 대심도 외에도 승학, 대티, 반송, 해운대터널 등이 계획돼 있다. 시민들 어깨가 더 무거워질 게 불 보듯 하다. 부산시는 지금이라도 민자도로 건설과 운영에 대한 대수술에 나서야 한다. 조달 금리를 현실에 따라 낮추고 불리한 실시협약을 재협약 수준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또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국비 확보 전략도 재점검해야 할 때다.

‘내게 힘이 되는 시장’을 모토로 삼은 박형준 시장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TF라도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 시민대표도 머리를 맞댈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gook72@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