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공간 읽기] 편백나무 숲 사이로 사계가 거실에 들어왔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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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구 청룡동 ‘여름집’

건물 밖에서 보면 마치 갤러리처럼 보이는 부산 금정구 청룡동 ‘여름집’.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건물 밖에서 보면 마치 갤러리처럼 보이는 부산 금정구 청룡동 ‘여름집’.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경사지 활용, 아름다운 자연 만끽

일반 주택과 다른 갤러리풍 외벽 눈길

내·외벽 간극 두고 공기 순환 유도

세밀한 타일 마감, 건물 완성도 ‘정점’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 인근에 ‘비비비당’이라는 전통 카페가 있다. 이곳은 전통차와 단호박 빙수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더해 청사포를 그림처럼 내려다보는 커다란 창은 어쩌면 ‘비비비당’이 자랑하는 최고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문이 말을 건넨다’라고나 할까.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청사포 풍경은 ‘멍 때리고’ 앉아 있기에도 좋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숲은 마치 영화 ‘와호장룡’ 속 대나무 숲의 산들거림을 떠올릴 정도로 하늘거린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마저 맑아지는 기분이다. 청정한 여유랄까?

한데, 이런 기분, 이런 여유를 내 집에서 맛볼 수 있다면(아마 더할 수 없는 기쁨일 터이다). 혹자는 “그런 집이 정말 있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집이 있다. 오른쪽으로 편백 숲길을 끼고 범어사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소위 ‘여름집’(SUMMER HOUSE·부산 금정구 청룡동)이 그렇다. 바로 옆에는 카페 ‘티원(TEA1)’이 자리 잡고 있다. ‘여름집’을 설계·디자인한 곳은 엘 올리브 등 맛집 디자인으로 유명한 PDM 파트너스(대표 고성호)다. “서울에 있는 건축사사무소까지 찾아갔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PDM 파트너스(당시는 이인 건축)를 추천해 주었는데, “건축은 즐거워야 한다”는 고 대표의 말에 매료돼 계약하게 됐다”고 건축주는 말했다. 건물은 2018년 12월에 완공됐고, 이듬해 3월 입주했으니,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여름집 자리는 본래 음식점을 하던 곳이었다. 건축주는 “전원주택에 살아 보니 처음엔 좀 힘들었다. 작년까지 집 주변 청소하고 정리하느라 바빴는데, 올해부터는 집 관리에 여유가 좀 생겼다”고 했다. 지금은 편백나무 숲을 바라보는 경사지엔 들꽃과 지반을 강화해 주는 황금수크렁 1000그루가 가득 심겨 있다. 특히 경사지엔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피어 화사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런 꽃밭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건물 앞마당, 뒷마당에도 있다.

옆 카페에 왔거나 등산객 중에는 이 집의 실체가 궁금해 물어보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한다. “혹시 갤러리냐”고. 실제 건물 밖에서 보면 흔히 봐왔던 일반 주택과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컬러 스테인리스 대문이 주는 분위기도 있지만, 건물 외벽이 일반 주택과 달라, 많은 이들이 갤러리나 사무공간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통창을 통해 편백 숲을 볼 수 있는 여름집 거실.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통창을 통해 편백 숲을 볼 수 있는 여름집 거실.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통창을 통해 편백 숲을 볼 수 있는 ‘여름집’ 거실. 정달식 선임 기자 통창을 통해 편백 숲을 볼 수 있는 ‘여름집’ 거실. 정달식 선임 기자

‘여름집’ 지하 1층 테라스에서 계곡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입에서 “으~ 시원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집 이름 ‘여름집’은 여기서 탄생했다. 정달식 선임기자 ‘여름집’ 지하 1층 테라스에서 계곡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입에서 “으~ 시원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집 이름 ‘여름집’은 여기서 탄생했다. 정달식 선임기자
정돈된 느낌의 ‘여름집’ 뒷마당. 정달식 선임기자 정돈된 느낌의 ‘여름집’ 뒷마당. 정달식 선임기자

■차경, 자연과 함께하다

‘여름집’은 도로 옆 150평 경사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세워져 있다. 집 아래 청룡동 계곡 옆으로는 일제강점기 조성된 편백 숲이 2.2km에 걸쳐 산책로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지하 1층 테라스에서 계곡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입에서 “으~ 시원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집 이름 ‘여름집’은 여기서 탄생했다. 건축주는 “이곳에 앉아 있으면 아무리 더워도 좀처럼 더운 줄 모른다”고 귀띔했다.

건물 밖에서 ‘여름집’ 주변을 둘러본다. 카페 티원이 자리 잡은 남쪽을 제외하곤 모두 신록으로 채워져 있어 눈이 호강이다. 그래서 사계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집의 큰 자랑거리다. 금정산 풍경이 외산이라면, 거실 앞 편백 숲 주변은 내산이 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완벽한 차경(借景)이다. 고성호(건축가) 대표는 “주변 편백 숲 풍경이 너무 좋아, 처음부터 자연을 경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차경 기법)과 주변과의 관계성 등을 염두에 두고 설계와 디자인을 했다”고 설명했다.

건물 밖 차경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차경을 만난다. 밖에서 건물을 보면 건물에 비해 현관문이 조금 작아 보인다. 그걸 읽었을까. 고 대표는 ‘단열 때문’이라고 곧바로 설명해 준다. ‘여름집’은 산 가까이 있는 주택이다 보니 겨울에는 도심보다 바깥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건물 내부에는 열교환 환기 장치도 작동한다. 신선한 공기는 안으로 빨아들이고, 탁한 공기는 밖으로 빼주는 장치다.

현관문을 지나 몇 걸음을 옮기면 자연과 함께하는 탁 트인 거실이 펼쳐진다. 동북 방향으로 펼쳐진 통창은 마치 거실이 편백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축주 부부는 “편백 숲의 하늘거림을 보며 소파에 앉아 멍 때리곤 하는데, 그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만약 눈이 영혼의 창이라면, 창은 집의 눈이란 걸 실감한다.

‘여름집’의 특징은 거실에서 온전히 다 드러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변화를 이곳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바깥 풍경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단순히 작은 창을 통해 자연을 ‘마지못해’, 혹은 ‘겨우’ 보는 수준이 아니다. 특히 통창을 통해 드러나는 자연은 한 폭의 그림이다. 영화 ‘와호장룡’ 속 대나무 숲이 부럽지 않다. 편백 숲 양쪽엔 층층나무, 안방 북쪽 테라스 쪽엔 산벚나무가 있어 봄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사계가 집 안에서도 느껴진다. 이쯤 되면 집 안에 걸린 그림마저 무색할 정도다. ‘여름집’의 사계는 거실, 안방, 서재에도 있다.

‘여름집’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풍경에 감탄사와 함께 “정말 멋지다”는 말을 쏟아낸다고 한다.

부엌은 통창을 통해 앞마당을 바라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마당에 심어진 꽃들을 보면서 요리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전체적으로 건물은 간결, 전통과 조화, 세련됨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건축주 부부는 “고 대표를 만나 건축을 알게 되고, 배워가면서 삶이 많이 윤택해졌다”고 말했다.

‘여름집’ 안방과 창. 전통 건축이 가미돼 세련미가 느껴진다.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여름집’ 안방과 창. 전통 건축이 가미돼 세련미가 느껴진다.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결로 현상과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여름집’ 지하 1층 건물 벽과 벽 사이에는 이처럼 숨 쉬는 공간이 있다. 정달식 선임기자 결로 현상과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여름집’ 지하 1층 건물 벽과 벽 사이에는 이처럼 숨 쉬는 공간이 있다. 정달식 선임기자

‘여름집’의 건물 외벽은 이중 구조를 취한다. 내벽과 자기질 타일 사이로 15cm 안팎의 간극이 있다.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여름집’의 건물 외벽은 이중 구조를 취한다. 내벽과 자기질 타일 사이로 15cm 안팎의 간극이 있다. 조명환 사진작가 제공

■전통과 조화…집, 숨을 쉬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1901~1974)은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빛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한 발짝 더 나아가면 결국 공간에 빛을 제공하는 창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여름집’에서는 창을 통해 빛과 만나고, 창을 통해 자연과 내밀하게 호흡한다.

건물 2층은 오롯이 부부만을 위한 공간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엔 중문도 있다. 부엌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2층엔 안방과 서재, 햇빛을 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중정 같은 빈(Void) 공간도 있다. 남편 화장실, 아내 화장실이 따로 있는 것도 재미있다.

부부 침실이 있는 안방에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만난다. 안방으로 가기 위해 툇마루 혹은 회랑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따라 남쪽으로 길게 펼쳐진 통창 형식의 긴 문을 만난다. 이 문은 그냥 문이 아니라 전통 한지가 앞뒤로 붙여진 문이다. 한지의 은은함이 침실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빛은 놀랄 만큼 한지를 통해 안방으로 스며든다. 안방 테라스를 통해서는 바람과 자연의 소리를 만난다.

중정 같은 보이드 공간은 넓지는 않지만, 부부가 함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편백나무 숲을 바로 볼 수 있는 창과 위로는 뻥 뚫린 하늘이 펼쳐져, 작지만 시원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도로를 끼고 있는 건물 서쪽 외벽에는 창을 줄이면서, 자연을 마주하는 동쪽 외벽엔 창을 내 개방감을 높였다. 이는 자연을 건축에 끌어들였던 우리의 전통 건축과도 많이 닮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으로는 거푸집 자국과 폼타이(form-tie)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자연스러움이랄까? 지하에는 건물 벽과 벽 사이에 숨 쉬는 공간이 있다. 거의 1m에 달한다. 고 대표는 “지하다 보니 외부와 온도 차로 ‘결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습기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건물 외벽도 이중 구조를 취한다. 내벽과 자기질 타일 사이로 15cm 안팎의 간극이 있다. 단열과 함께 건물이 숨을 쉬도록 했다. 이런 설계와 디자인은 바깥 계단과 외벽, 건물 곳곳의 테라스에서도 읽힌다. 이게 세밀함, 디테일이다.

건물 외벽을 한 바퀴 돌아 감싼 자기질 타일의 줄눈에서도 세밀함은 드러난다. 이 세밀함이야말로 건물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부분이다. 작은 디테일 안에 전체의 개념이 응축돼 나타난다.

고 대표는 “가끔 건물을 보면, 보이는 건물 면만 깔끔하게 처리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집도 하나의 제품이라고 보면 제품 앞만 마무리하고, 뒤는 마무리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이건 제품(건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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