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코로나19 보도와 지역 혐오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지난 4월 말 부산·울산·경남의 코로나19 확산이 심상치 않았다. 적어도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렇다. 오랫동안 확산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이 지역이 전국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4월 말부터다. “수도권·부울경 확산에 나흘째 700명대… ‘4차 유행’ 가시화하나” 식의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시민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태풍의 눈’, ‘수도권급 확산세’, ‘4차 유행’ 등 선정적인 용어는 사태의 심각함을 강조했다. “신규 확진자 나흘째 하루 700명대… 수도권·부울경 전체의 80% 넘어”(KBS) 등의 수치는 마치 악몽이 임박했음을 입증하는 객관적 물증인 듯했다. 관련 기사에는 곧 지역 혐오성 발언과 함께 봉쇄를 주장하는 댓글이 달렸다.
수치 잘못 활용하면 왜곡 보도 우려
언론, 서울 코로나 만성적 위기 덤덤
4월 말 부울경 심각하다며 불안 조장
특정 집단·지역 혐오감 키울 수 있어
장기적인 전염병 보도에서 수치의 추이 보도가 필수적인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보도 사례 역시 이 관행을 충실히 따른 결과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치는 잘못 활용하면 왜곡·과장 보도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번 부울경 코로나19 확산 보도가 전형적인 예다.
우선 수도권과 부울경이라는 광역 단위로 묶어서 보도하는 편의성 관행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앞에서 거론한 KBS 보도의 근거로 삼은 4월 24일 신규 확진자 수치를 다시 따져 가면서 분석해 보자. 이날 확진자 760명 중 수도권은 515명(67.8%), 부울경은 146명(19.2%)으로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물론 가공할 만한 규모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상은 두 지역이 전체 인구의 65.4%를 차지하며, 특히 수도권 인구가 그중 절반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 발생하는 착시현상이다. 인구가 많으니 확진자도 많은 거다. KBS 기사는 가장 규모가 큰 두 지역을 엮어서 마치 사태가 유례없이 심각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수도권이나 부울경처럼 큰 지역 단위로 보도하면 구체적인 문제점의 소재가 흐려지게 된다.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자치단체별로 편차는 크다. 부울경 역시 마찬가지다.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은 각각 신규 확진자의 33.3%(253명), 32.1%(244명), 2.4%(18명)를 차지했다. 부울경의 경우 부산 5.8%(44명), 경남 6.8%(52명), 울산 6.6%(50명)였다. 그런데 지역 간 인구 격차 때문에 이 비율 자체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인구 규모를 감안해 수치를 새로 환산해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각 지자체의 확진자 규모가 전체 확진자 숫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나누면, 지역별 확산 정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는 서울의 확진자 비율이 인구 비율의 1.8배, 경기는 1.23배인데 비해 인천은 0.42배에 불과했다. 부울경에서도 부산은 0.89배, 경남은 1.06 배였으나 울산만 3배에 달했다. 쉽게 말해 서울과 울산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경기와 경남은 보통, 인천과 부산은 방역의 성공 사례라고 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다. 편의대로 수도권과 부울경처럼 더 큰 지역 단위로 뭉뚱그려 보면 이 차이가 보이지 않게 된다.
해당 보도의 또 다른 문제는 시간적 추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부울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과 부산을 비교해 보자. 확진자 집계 수치는 날씨나 요일 등에 따라 매일매일 변동될 수 있다. 그래서 주 단위로 1일 평균치를 계산해 지역별로 비교하면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부산은 신규 확진자가 10명대에서 3월 마지막 주에 53.1명으로 치솟았다가 46.4명, 40.1명, 35명, 30명으로 기사 작성 시점까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더구나 부산의 수치는 서울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다. 부산의 한 주 평균 최고치인 53.1명을 서울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151명에 해당한다. 부산의 최고치는 한 주 동안에 그쳤지만, 서울에선 작년 11월 19일 신규 확진자가 100명대에 진입한 후 부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6개월째 지속됐다. 12월은 하루 평균 329.2명에 달했고, 그나마 3월에 122.4명으로 떨어졌다가 4월에는 다시 193.6명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언론 보도는 한두 주 동안 지속된 부산의 위기에는 ‘태풍의 눈’이라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서울의 만성화한 위기 상황은 심각하게 보지 않는 듯하다.
전염병이 장기화하면 시민의 불안과 고통은 심해진다. 이 모든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본능이 작동하기 쉽다. 이때 여론 주동자의 부추김을 받으면 특정한 집단이 애꿎은 표적이 되기 쉽다. 유럽 중세의 흑사병 때 유대인이 그랬다. 코로나19 사태에서는 특정 종교집단이나 개인이 표적이 돼 혐오와 증오에 시달렸다. 언론 역시 문제를 바로잡기보다는 방조·조장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금은 그 혐오 대상이 지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