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차별이라 말하는 法…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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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 ‘차별금지법 제정 10만 행동 선포 기자회견. 부산차제연 제공 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 ‘차별금지법 제정 10만 행동 선포 기자회견. 부산차제연 제공

“모든 권력은 상대적이기에 나 또한 언제든 약자, 즉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달 24일,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의 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됐다. 그는 “유복한 부모님, 해외 거주 경험, 서울 4년제 대학 졸업, 이성애자, 비장애인, 정규직”이라는 기득권이었음에도 그것이 “단지 성별을 이유로 힘없이 바스러지는” 경험을 했다고 썼다. 9일 현재 7만 3000여 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오는 23일까지 10만 명을 달성하면 국회는 이 안건을 소관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10만 국회동의청원 진행 중

지난해 장혜영 의원 법안 대표발의

성별·장애·나이 등 23가지 사유 담아

소송지원·차별시정 의무 등 명시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 고군분투

인권조례 개정 촉구·퀴어축제 연대 등

“피해자가 당연하게 여기던 차별을

차별이라 이야기할 수 있게 돕는 법”


차별받아본 적 있습니까

부산에서도 지난달 25일 차별금지법 제정 10만 행동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29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부산차제연)에 더해 #Me_too운동부산대책위, 420장애인차별철폐부산공투단,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 탈핵부산연대 등 부산의 다양한 연대체가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모든 영역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것은 연대의 의미뿐 아니라 차별금지법이 모두를 위한 법이라서다. 부산차제연은 시민을 대상으로 이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 “처음 시민들을 만나면 ‘차별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봅니다. 대부분 처음에는 ‘없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겪은 것도 차별이었구나’라고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사회변혁노동자당 부산시당 남영란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지난해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명시된 차별금지사유는 23가지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인종, 국적,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이 포함된다. ‘등’도 붙여서 사회변화에 따른 차별에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이들 사유 중 하나도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부산반빈곤센터 최고운 대표의 말처럼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차별에 직면한다. 그들은 항의 민원 때문에 체육관 대관을 거부당한 성소수자단체일 수도 있고, 가족 형태, 병력, 비정규직을 이유로 채용이나 처우에서 불이익을 받는 노동자일 수도 있으며, 장애나 나이 때문에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는 소비자일 수도 있다. 이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는 사람도 많다.

차별금지법안은 △고용 △재화·용역 등의 공급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행정서비스 제공이나 이용 영역에서 △직접차별뿐 아니라 △간접차별 △성별 등을 이유로 한 괴롭힘 △차별을 표시하고 조장하는 광고 행위, 그리고 2가지 이상 사유가 결합된 복합차별을 금지한다. 노동인권연대 정지혜 활동가는 “나와 내 가족, 친구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차별을 모두 다룬다는 점을 잘 알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인권위 연구로 코로나로 인한 부산 이주민 피해 실태를 조사한 이주민과함께 한아름 사무처장은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목욕탕이나 식당 입장이 거부되고 병원이나 약국에서조차 혐오발언에 노출된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언제든 나도 차별받을 수 있다고 느끼면서 반차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부산성폭력상담소 이평 활동가)는 기대도 있다.

지난 3일 도시철도 사상역 앞 차별금지법제정 목요행동. 부산차제연 제공 지난 3일 도시철도 사상역 앞 차별금지법제정 목요행동. 부산차제연 제공

왜 지금 차별금지법이냐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는 2011년에 이어 2017년 재결성됐다.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더 거슬러올라간다. 노무현 정부에서 2006년 국가인권위가 국무총리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처음 권고했다. 이어 17~19대 국회 발의안은 논의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일부 종교계의 거센 반대가 장벽이었다. 20대를 건너뛰고 지난해 7년 만에 다시 법안이 발의됐고, 국가인권위도 14년 만에 다시 시안과 함께 국회에 제정을 촉구했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도 고군분투했다. 2018년 정식 출범하자마자 해운대구를 시작으로 기초지자체와 부산시의 인권조례 제·개정을 촉구했고,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기념하는 아이다호문화제와 부산퀴어문화축제에도 연대했다. 서면 한복판의 아이다호문화제에서 다양한 성격의 연대단체들이 어우러진 현장은 모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함께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러 활동가들에게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어려움도 많았다. 일부 기독교계 반대로 부산시와 기초지자체의 인권조례는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는 등 누더기가 됐다. 부산퀴어문화축제는 3회 만인 2019년 안전과 공공성을 사유로 불허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산지부 이현우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당시 해운대구청이 장소 사용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고, 법원도 구청의 행정이 차별행위라고 적극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이 유예되면서 차별은 차별로 이야기되지 못하고 혐오는 커져갔다. 군은 성전환수술을 심신장애로 판단해 변희수 하사를 강제전역하도록 했고 변 하사는 세상을 떠났다. 부경대성소수자모임 용사길드 현수 대표는 부경대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모임 홍보글을 올렸다가 이유없이 신고돼 계정을 정지당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학생인권대나무숲’에는 성차별이나 투블럭컷 금지, 강제야자 강행 같은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현수 대표는 “계속되는 부고나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커플의 고통을 더이상 지켜보지 못하겠다”면서 “지금 여러분 옆에 차별받는 사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수나로 부산지부 잿녹 활동가는 “교육현장에서조차 차별 발언을 듣거나 불이익에 노출된다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은 성별을 이유로 한 배치 차별이나 괴롭힘이 성추행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백래시(반격)가 득세하고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으로 ‘어떤 차별은 용인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도 우려스럽다. 한아름 사무처장은 “인간이 노력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존엄한 게 아니듯 ‘공정한 차별’이란 존재할 수 없다”면서 “국민이 아니라서 재난지원도 받지 못한다거나 장애인이나 이주민은 당연히 차별받아도 된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져야 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 등 기존의 개별법이나 국가인권위법에도 차별금지 조항은 있다. 성이나 연령에 따른 고용차별이나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한 노동조건 차별은 현행법으로도 규제가 가능하고, 국가인권위 진정을 통해 시정권고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국가인권위 권고는 강제력이 없고, 피해자들은 개별적 차별 사유를 입증해 인정받고 다시 법적 절차를 밟는 지난한 과정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실효적인 구제 조치를 둔다. 인권위는 시정권고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소송을 지원할 수 있고, 법원은 차별 중지나 원상회복 등 임시조치나 피해 손해배상 판결을 할 수 있다. 차별 진정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2차 가해에 대한 처벌 조항과 국가·지자체의 차별시정 의무도 명시했다. 대안문화행동 정선욱 활동가는 “법 제정으로 적어도 혐오가 돈이 아니라 손실이 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당장 모든 차별이 처벌받거나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남영란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은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 피해자가 당연하게 여기던 차별을 차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고, 더 많은 차별을 드러냄으로써 차별을 가능하게 한 사회 구조를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부산차제연은 더 많은 시민들과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혐오와 차별을 넘지 못하는 사회는 정체하고 퇴보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먹고 사는 문제도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신진문화예술행동 흥의 김기영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에도 평등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고민하려고 한다.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평 활동가는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 21대 국회가 이번에는 꼭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민동의청원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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