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로봇 산업, 부산에서 날아오를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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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로봇 협동화단지로 산업 선도"
정체된 지역 제조업 혁신 기회로

로봇! 2030세대는 영화 '트랜스포머'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40~50대에겐 '로보트 태권브이'의 추억이 더 생생하다. 그 시절 아이들은 태권브이를 직접 따라 그렸다. 장래 희망이 로봇 조종사라고 대답하는 친구도 있었다. 70~80년대에 태권브이는 꿈과 희망이었다. 부산시가 해운대 센텀2지구에 '로봇 산업 협동화단지'를 조성해 로봇 산업을 선도하겠다고 선언하자 새삼 옛 추억이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로봇 산업이 지금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한다. 로봇 산업은 그동안 어떻게 성장했으며, 부산이 로봇에 뛰어들겠다는 이유는 뭘까.


70~80년대 로보트 태권브이는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산일보 DB 70~80년대 로보트 태권브이는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산일보 DB


■ 달려라 달려 태권브이

로봇이란 단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걷고 말도 하는 기계 장치가 로봇(휴머노이드)이다. 작업이나 조작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 장치 역시 로봇이다. 통상적으로는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탁기, 복사기, 자판기, 엘리베이터도 포함된다는 이야기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의 3원칙' 중 첫 번째는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이다. 하지만 로봇이 인간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영화가 드물지 않다. 로봇이 처음 등장한 희곡의 설정부터 로봇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산업용 로봇은 1958년 미국의 컨솔리티드 컨트롤즈사가 디지털로 제어되는 자동설비의 기본형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국내에는 70년대 말에 로봇이 등장한다. '로보트 태권브이' 시리즈 첫 번째 작품도 비슷한 시기인 1976년에 개봉했다. 태권브이는 일본이 제작해서 1975년 방영한 '마징가 제트'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태권도를 소재로 했다는 창의성은 지금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태권브이는 국기원에서 명예 4단 단증을 받기도 했다. 아쉽게도 태권브이의 인기는 사라졌다. 전북 무주군이 논란을 빚었던 높이 33m의 태권브이 조형물을 장소를 바꿔 다시 추진 중이라는 우울한 소식만 들려온다. 일본의 움직임은 우리와는 다르다. 높이 18.3m, 무게 25t의 실제 탑승하는 로봇 건담을 지난해 요코하마에 만들었다. 건담은 팔, 다리, 손가락, 무릎 등 34개 관절 부위를 굽힐 수 있다고 한다. '기동전사 건담'은 1979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2001년에 처음 나온 로봇청소기는 현재 비약적으로 성능이 개선되었다. 사진은 초창기 모델. 부산일보 DB 2001년에 처음 나온 로봇청소기는 현재 비약적으로 성능이 개선되었다. 사진은 초창기 모델. 부산일보 DB


■ 생활 속으로 들어오다

로봇은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가정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로봇이 바로 청소기다. 로봇청소기의 진화 과정은 로봇 산업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로봇청소기는 2001년에 처음 나왔다. 당시에는 300만 원대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벽에 스스로 박치기해서 고장 나기 일쑤였다. 지금은 가격이 20만~30만 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성능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기존의 흡입용뿐만 아니라 걸레 전용과 겸용까지 나왔다. 로봇청소기 시장은 앞으로 5년간 연평균 18%씩 성장해 미래의 청소기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빙 로봇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부산역 1층 돼지국밥 전문의 양산국밥에서는 로봇이 직접 서빙을 한다. 서빙 로봇에는 3~4개의 선반이 달려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나를 수 있다. 서빙을 로봇이 대신하면서 매장 운영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사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남는다. 서빙 로봇의 렌털 요금은 36개월 약정 기준 월 평균 60만 원대. 2018년 5000만 위안 수준에 불과하던 중국 서빙 로봇 시장은 지난해 20배 이상 커진 11억 6000만 위안을 기록했다.

반려 로봇도 현실이 되었다. 서울시 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올해 '독거 어르신 우울증 예방을 위한 반려 로봇 활용 언택트 케어 사업'을 진행하면서 90명을 대상으로 로봇 '복돌이'를 제공했다. 복돌이는 약 복용 알림 및 확인, 체조, 퀴즈, 종교 말씀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 중이다. 복돌이는 말벗 역할을 하다 어르신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긴급 연락 요청도 한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마포구에서는 우울증과 치매 노인을 위한 AI 반려로봇 '마포둥이'를 보급했다. 부산은 오는 9월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어느 도시보다 고독사 대책이 절실한 부산이야말로 반려 로봇에 대한 연구와 보급이 절실하지 않을까.


부산역 1층 양산국밥에서 로봇이 서빙을 하고 있다. 박종호 논설위원 부산역 1층 양산국밥에서 로봇이 서빙을 하고 있다. 박종호 논설위원


■ 중소기업과 대학에 기대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말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까지 로봇 산업에 그룹의 운명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례였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보행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MIT 교수 출신 마크 레이버트가 설립했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이 인수했다가 소프트 뱅크로 넘어간 이력이 있다. 매각 금액은 1조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현대차는 그룹 차원의 로봇 개발 역량 향상과 함께 자율주행차, 도심항공모빌리티 기술과의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 로봇이 현대차에 날개를 달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코로나 이후 로봇 대항해 시대 온다'를 주제로 연 2021 로봇 미래전략 컨퍼런스는 우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카이스트 배일한 교수는 전기차가 업그레이드되면 차가 로봇의 일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흥미로운 예측을 했다. 트랜스포머의 세상이 실제로 열린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최혁렬 교수는 "최근 대기업의 로봇 시장 진입 소식이 자주 들려오지만 로봇 산업의 플레이어들은 스타트업, 벤처같이 몸이 가벼운 기업이 맞다"고 밝혔다. 기술집약적이고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에 길이 있고, 대학의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사운을 걸고 지난해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그룹은 사운을 걸고 지난해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현대차 제공

■ 로봇도시 부산을 꿈꾸다

국내에는 로봇공학자가 드물고, 로봇공학과가 개설된 대학도 많지 않다. 로봇을 만들고 싶다면 기계공학과에 들어간 뒤 전자공학을 좀 더 배우는 길을 권한다. 부산의 제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위축되고 있는 기계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봇 산업의 수요자가 될 기계, 자동차부품, 조선, 에너지, 화학 등 다양한 제조업 기업들이 동남권에 즐비하다. 해양도시 부산의 특성을 살려 해양 구조, 선박 감시 등 해양 관련 로봇의 특화가 가능하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원전 등의 특수목적용 로봇도 유망해 보인다. 규모는 대부분 영세하지만 부산지역 로봇 산업 사업체 수는 468곳이고 종사자 수는 4200명이 넘는다.


부산시와 부산로봇사업협동조합이 8일 상호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부산일보 DB 부산시와 부산로봇사업협동조합이 8일 상호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부산일보 DB

부산 로봇 산업 1세대 기업인인 심상균 부산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부산이 로봇 협동화단지를 제대로 만들면 로봇 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봇 산업의 메카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인력 확보다. 요즘 기업들은 수도권이 아니면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주여건이 좋지만 부동산 가격이 서울에 비해서는 저렴한 센텀은 그런 면에서 매력이 있다. '해운대'와 '센텀'이라는 브랜드는 전국에서 인정받는다. 청년들은 월급을 조금 덜 받더라도 센텀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부산지역 대학들도 로봇 산업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면서 관련 학과를 속속 개설하는 추세다. 부산시에는 로봇 산업 육성을 위한 조례까지 제정돼 있다. 산학연과 부산시가 힘을 모으면 지역에 로봇 산업을 육성하고, 부산 제조업도 첨단화하는 길이 열린다. 출근 시간에 센텀역에서 청년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장관이다. 부산에 로봇 산업이 뿌리를 내려 청년들이 더 이상 수도권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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